(여호수아 1:1-9, 단절이 아니라 연속과 전환)

여호수아서는 “모세가 죽은 후에”로 시작한다.
사실 그 앞에 다른 단어가 붙는데,
바로 “여호와의 종”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종”이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위기요 단절인가?
두 가지 다 해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모세가 출애굽의 대역사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인도했다.
그것은 세상 역사에서 있지 않은,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세계적인 강대국으로부터 노예로 있던 민족이 해방되었다.
그 큰 나라가 원해서 이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고 발악하면서 막다가
결국에는 맥 못 추고 약 200만 명이 족히 될 인력이 빠져나간 것이다.

출애굽의 사건과 이후 40년 동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모세였다.
그러나 그 일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사건이 아니었다.
모세는 초인적인 초능력자가 아니었다.
이 사건과 역사와 모세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이 출애굽을 계획하시고 모세를 통해 이루셨다.

그러므로 모세의 죽음은 이 역사의 단절일 수 없다.
왜냐하면 모세가 이 일의 주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출애굽과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주관하시고
모든 사건과 장기지속적 역사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대부분의 역사는 인물에 의해 단절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역사일 경우에 그렇다.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백성을 이끌 지도자로 삼으셨다.
모세가 “여호와의 종”이었던 것과 똑같이
여호수아도 “여호와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여호수아 24:29, 사사기 2:8)
위대한 영웅적 지도자가 사라진 뒤에
후임자는 당연히 두렵고 의기소침해지기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명이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직 출애굽의 여정에 있다.
하나님은 “일어나 요단을 건너 ··· 그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이 사명은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이제 가나안 일곱 부족과 싸우며 땅을 차지해야 한다.
어쩌면 큰 전쟁 없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매일 아침이면 땅을 덮은 만나를 먹으며 하루씩 살아가면 되는
지난 40년의 역사와 비교할 때,
이제 이스라엘은 전쟁과 정복의 민족이 되어야 하고,
농사를 짓는 근로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명령형이지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다.
또한 약속의 말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여호수아가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출애굽과 광야여정의 기적과 놀라운 역사는
모세의 권능에 의한 것이 조금도 아니었다.
모세는 언변이 뛰어나지 않은, 두려움 많던 사람이었다.
그러한데도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 것은 모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의 능력과 이력에 의거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는 하나님의 일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다.

그런데 “일어나 ··· 건너 ··· 가라”는 사명과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과 위로와 격려와 약속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다.
바로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다시 강조되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로 이어진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죽음으로 인해 변경된 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된 사명이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에게 계획을 다 말씀하셨다.
그 계획은 모세가 몇 백 년 살면서 이룰 일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수명과 세대의 교체에 상관없이 이루실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그 다음 직무자에게도 유효하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에게 그가 죽은 뒤에 세워질 후임자가
계속 수행할 직무를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단절된 자가 아니다.
모세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맡는 것이 아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다.
그 연결고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로서 이어가실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연속이란 똑같은 것의 반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앞으로 40년을
이 광야 저 들판을 방랑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이고 약속하신 새 사명을 이룰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전환을 의미한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맡은 일의 다음 단계를 행할 것이다.
그러나 단절적인 전환이 아니라, 연속으로서 전환이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능가해야 할 정치적 경쟁의 사명―단절적 전환―을 행할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했던 것과 똑같이 하면 되는 것―연속적 답보(제자리)―이 아니다.
연속적 전환.
이것이 여호수아의 사명이요 직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신 계획의 연속이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의 성취를 위한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모든 새로운 세대가
바로 이 사명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연속으로 이어가며,
이미 약속으로 주신 새 사명들을 새 세대가 이뤄가는 전환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