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1-10, 두 독수리 중 선택의 문제?)

에스겔의 선지서에는 하나님께서 당시의 상황을 비유로 설명하신 예가 많이 들어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바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큰 독수리가 백향목 가지를 꺾어 성읍에 두었다가 거기서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었더니 포도나무가 되고 무성해졌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가 다른 독수리에게서 물을 받으려고 의지한다.
이 상황에서 물음은 이것이다.
포도나무가 번성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두 마리의 독수리가 등장하는 것과 관련된다.
포도나무는 첫 독수리에 의해 심어졌다.
종자가 “큰 물가 옥토”에 심겼다.
그 목적은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함이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는 다른 독수리를 의지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둘째 독수리가 포도나무를 번성하도록 물을 길어다주기는커녕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 나무는 번성하지 못한다.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되어
아주 약한 사람이라도 “그 뿌리를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쇠할 것이다.

설명을 보면 두 독수리는 바벨론과 애굽을 상징하고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셋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비유로 말씀하시려는 것은 무엇인가?
비유의 내용 자체에서는 첫 독수리가 포도나무를 심었고
그 목적은 포도나무에게 이로운 것이다.
그런데 포도나무가 둘째 포도나무를 의지하여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내용이라면 이스라엘(포도나무)은 바벨론(첫 독수리)을 따라야지
애굽(둘째 독수리)을 의존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이롭게 하고
애굽은 해롭게 한다는 뜻인가?
바벨론은 선하고 애굽은 악한가?
분명 비유의 내용에 두 독수리는 구별된다.
한쪽은 포도나무를 번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고
다른 한쪽은 그 반대다.
그러나 이 비유의 내용에만 국한하여 뜻이 얽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이스라엘)는 첫 독수리(바벨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이스라엘)를 창조하신 분이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창조하셨다.
그것은 이 비유 밖의 대전제다.
그러면 하나님이 포도나무를 위해 첫 독수리를 사용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게 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문제가 있는 포도나무를 첫 독수리를 통해 새롭게 하려고 하신다.
즉 하나님은 문제가 있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을 통해 새롭게 하려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바벨론은 포도나무의 창조자나 주인이 아니라,
창조자이며 주인이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다른 독수리(애굽)를 의지한다.
이것은 두 강대국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뜻이냐 자기 뜻이냐,
즉 하나님이냐 인간이냐의 양자택일 문제다.
이스라엘은 후자를 택한 것이다.
애초에 이스라엘이 죄를 졌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한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을 더 새롭게 하려 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치 애굽이 구원자인양 의지하려고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 않고 애굽의 주권 아래 있으려 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주권 아래 있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첫 독수리냐 둘째 독수리냐,
즉 바벨론이냐 애굽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냐 인간(자기 자신)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다시 번성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바벨론이 아니다.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고
포로 생활을 통해 연단함으로 하나님을 다시 의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선한 뜻,
그것이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한다.
이스라엘의 번성―용서와 회복―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
지금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하시지 애굽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바벨론과 애굽 각각의 선악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제적 관계와 정황, 이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특정 나라를 선하고 악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라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함에 있다.
우리는 의롭지 않다!
누구도 의롭지 않다.
하나님만 의로우시다!
나와 우리 민족을 하나님 앞에서 조명할 때다.
참으로 겸손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로 나아가도록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