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1:1-18, 애굽을 누구에게 비하랴)

하나님께서 다시 에스겔을 통해 애굽을 향해 선포하시는데 그 첫마디가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는 말씀이다.
“누구에게 비하랴”,
이 말은 ‘누구에게도 비교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 비교의 내용인 “큰 위엄”이 언급되었으므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애굽의 큰 위엄’이 강조되고 있다.
애굽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으랴.

그런데 바로 그 뒤에 하나님은 앗수르의 예를 언급하신다.
사실은 애굽을 앗수르와 비교하시는 것이다.
애굽에 견줄 수 있는 나라로는 앗수르가 있었다.
앗수르는 “레바논 백향목”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키가 크”다.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뻗어 나갔”다.
키가 큰 나무, 굵고 가는 가지가 무성한 나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디서나 눈에 띄고 많은 짐승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것을 뜻한다.
키가 커서 누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우월한 자화상을 가져다주는가!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생태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컸다.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았다.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들이 그 나무 덕을 보았다.
그 나무는 뭇 동물들에게 집과 번식의 장소를 제공했다.
더 나아가서 큰 나무 앗수르는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장소가 되었다.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사회와 국제질서에서도 앗수르는 중심노릇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는가?
아니다.
이 “큰 나무”는 봉사와 제공과 돌봄의 중심이 아니라
지배와 압제와 약탈의 중심으로 작용했다.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본질적 평가는 바로 “교만”이다.
앗수르가 그렇게 “큰 나무”가 된 것은 “물” 때문이었다.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쳤다.
“물들”, “깊은 물”, “강들”, “둑의 물”은 모두 “물”이다.
앗수르를 “큰 나무”로 자라게 한 것은 바로 “물”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
땅에 고여 내와 강을 이루고 지하에 스며들어
가물어도 뿌리를 적실 수 있는 그 물이 앗수르를 “큰 나무”로 만들었다.
그 “물”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어디서 생긴 것인가?
누가 주었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에 비를 내리시고 물이 풍성하게 하셨다.
그 물로 나무가 자라서 키가 누구보다 커졌다.
앗수르는 큰 나무로 자란 것이지 처음부터 큰 나무가 아니었다.
앗수르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모든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베푸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태적으로, 국제적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앗수르가 발전시킨 자화상은
그 목적을 위한 사명이나 봉사가 아니라,
오직 우월감, 지배감, 곧 “교만”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두로가 “나는 신이라”고 하는 것과,
애굽이 나일 강의 “큰 악어”를 자처하며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모두 “교만”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큰 악어는 사냥꾼에 의해 갈고리로 아가미가 꿰인다.
큰 나무는 “여러 나라의 포악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린다!
나무, 그것은 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보면 도끼와 톱으로 베고 켜고 자르고 두드려서
집을 만들고 이것저것에 쓰이고
최종적으로는 불쏘시개로 쓰인다.
아, 나무는 자신이 크다는 사실로
그의 가지와 그늘에 깃든 새와 짐승과 나라들을 거느리는 줄 알겠지만
나무를 사용하는 자가 있다.
새와 짐승은 기껏해야 그 나무에 깃들이고 안길 뿐이지만
사람은 그 나무를 벤다, 켠다, 잘라버린다, 태워버린다!
나무가 사람 앞에서 무슨 잘난 체를 하겠는가!
그런데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똑같이 피조물이다.
나무보다 한참 위의 고등 존재인 사람 위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시다!
그 모든 것의 창조주요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사람과 나라를 통해 그 교만한 나무를 찍어 버리신다.

“큰 악어” 애굽은 누구와 같은가?
“큰 나무” 앗수르와 같다.
유다가 망하는 이 시기에 앗수르는 이미 멸망한지 오래다.
한때 잘 나갔던 앗수르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를 상기하면
애굽의 운명도 알 수 있다.
“애굽의 ··· 큰 위엄을 누구에게 비하랴”
이 말씀은 ‘애굽이 아무리 위엄이 커 보여도
그만큼 컸던 앗수르가 멸망한 사실에 똑같이 비교가 된다’는 뜻이다.
애굽은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다.
애굽은 앗수르와 똑같다.
애굽은 어느 때고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교만한 강대국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