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0:1-26, 내가 그를 통해 심판하리라)

애굽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던 날이 이미 있었다.
그때 하나님의 권능은 애굽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아니라
애굽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되던 그 밤에 일어났다.
첫 유월절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 임했고
애굽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날이 다시 온다.
유월절 때는 애굽이 타격을 입었지만
이스라엘만 빠져나갔을 뿐 애굽이 망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애굽이 망한다.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다.
“통곡하며” “슬프”고 “심한 근심”이
애굽뿐 아니라 그 주변에까지 임할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이 “애굽의 무리들을 끊”을 것이다.
“그가 여러 나라 가운데에 강포한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땅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때 바벨론이 “칼을 빼어 애굽을 쳐서 죽임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애굽에 대한 심판은 바벨론의 손을 넘어선다.
애굽을 멸망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가”라고 하였는데 “그”는 바벨론,
구체적으로 느부갓네살 왕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가”보다 더 많이 나오는 단어는 “내가”다.
“내가 그 모든 강을 마르게 하고 ···”,
“내가 그 우상들을 없애며 ···”,
“내가 (애굽의 동맹자) 바드로스를 황폐하게 하며 ···”,
“내가 애굽의 멍에를 꺾으며 ···”,
“내가 애굽을 심판하리니”.
애굽의 심판자는 “그”가 아니라 “내가”라고 말씀하는 분,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애굽을 심판하신다.

느부갓네살 왕의 손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한 도구이며,
한 가지 경로다.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내려뜨릴 것이라”
강대국들끼리의 전쟁은 역사에서 늘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두 강대국의 팔과 팔이 힘을 겨룬다.
그러나 누구의 팔이 올라가고 누구의 팔이 내려뜨려지는 가는
그들 팔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팔은 들어 주고” 누구의 “팔은 내려뜨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하시려는 자를 심판하시는 한 가지 방법이다.
바벨론의 팔이 올라가고 애굽의 팔이 내려뜨려질 때,
그것은 “내(하나님)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고
그를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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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현상을 일반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
선한 자가 악한 자를 군사적으로 늘 이기는 것이 아니며,
역사에서 선한 세력에 의한 악한 세력의 심판이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에 일어난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승자가 자신의 신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은
얼마든지 오류일 수 있으며 자기 우상화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일은 언제나 분명하며
승리를 통해서든 패배를 통해서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심판과 회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것이 진실이다.
국제적인 관계와 정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신지 미리 말씀하시고
또는 나중에 해석해주실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에스겔의 예언을 통해 거듭 말씀하시는
이스라엘과 두로와 애굽의 운명,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연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것을 듣고 우리에게 성경을 쓰는 자가 없으므로 알기 어렵다.
과연 어느 나라가 하나님의 도구인지,
어느 나라가 심판을 받는 것인지,
어는 나라가 하나님 편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승리와 패배, 번영과 쇠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도구는 아니다.
성공과 실패, 1등과 꼴찌가
하나님께서 뜻을 보이시는 언제나 보편적인 도구는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분명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진리를 행하는 자가 하나님 편이라는 사실이다.
진리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이다.
애굽이 교만함으로 인해 그 길을 걷지 않은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애굽이 바벨론에 패배했기 때문에 그에게 불행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좇지 않은 것이 그의 불행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조차 그 자신의 정당함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죄에 순종하지 않는 것,
그러나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
겸손하게 다시금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
그것이 승패와 성쇠에 관계없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