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9:1-21, 나일 강의 큰 악어, 최강자에서 최약자로)

두로에 대한 비극적 경고에 이어
애굽에 이를 심판이 선포된다.
두로의 경우보다 더 길고 더 가혹한 심판이
애굽에 시행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화상이다.
두로가 자신을 ‘신성시’했던 것과 유사하게
애굽도 자신에 대해 자부심 넘치는 자화상을 발전시켰다.
애굽을 특징짓는 것은 나일 강이었고
세상에서도 역사가들이 애굽을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선물’이란 애굽이 나일 강의 혜택을 입었고
그로 인해 강대해진 것을 전제한다.
애굽은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였다.
이때 애굽은 자신을 그 강의 주인이요 일인자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큰 악어”로 비유된다.
애굽은 “자기의 강들 가운데 누운 큰 악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나일 강을 “내 것”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애굽은 나일 강을 “자기의 강들”이라고 한다.
누가 이곳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애굽 것이다.
왜 애굽 것인가?
애굽 땅을 흐르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애굽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영토와 관련한 상식으로는 그럴 것이지만
애굽은 더 나아가서 그것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뻐기고 있다.
천하와 만민을 자신이 만들었다고까지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애굽을 강성하게 한 자연적 조건인 나일 강을
자기가 만든 것으로 선포한다.
애굽의 강대함은 애굽 스스로 만든 노력의 결과다.
이것이 애굽의 자화상이다.
나일 강을 만든 자라면 그는 인간과 나라를 뛰어넘는,
강을 만들고 산을 지어내는 자, 곧 신이다.
단지 고대의 전통적 개념으로 지구의 일부를 관장하는 민족신이요
다른 민족(신)들보다 더 강한 신들 가운데 최강자다.
이것이 애굽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일 강과 그 가운데 큰 악어의 강대함을
결코 영원한 지위와 능력으로 보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애굽 땅과 그 가운데 강을 지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암몬과 에돔과 세일과 모압과 ···
두로와 애굽과 바벨론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만민과 우주의 창조주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애굽이 최대의 특혜요 특권이요 무기로 삼는
나일 강을 얼마든지 메마르게 하시고 강물이 끊기게 하실 수 있다.
나일 강이 위대한 것은 그 물 때문이다.
그런데 물이 마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사막과 황무지가” 되게 하신다.
그것은 나일 강이 마르기 때문이다.
나일 강이 강의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한다.
이제 애굽은 나일 때문에 망할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나일 강만 의존하였던 것이다.
세상에 나일 강만큼 큰 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보다 큰 나라도 있다.
그보다 작은 강을 더 잘 이용하여
더 강대한 국가를 건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굽은 나일 강에만 의존하여
그것이 마르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 이외의 것에 전적으로 의존한 자의 최후다.

그리고 큰 악어는 강이 마르기 전에라도 얼마든지 잡힐 수 있다.
악어를 잡는 사냥꾼이 누구냐에 따라
아무리 큰 악어라도 사냥감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 큰 악어를 “갈고리로” “아가미를 꿰”신다.
그리고 큰 악어가 주관했던 나일 강의 모든 물고기들이
그 악어와 함께 딸려와 땅으로 버려진다.
물을 떠난 악어와 물고기.
더구나 공중에 들어 올려 졌다가 지면에 내동댕이쳐진 악어와 물고기.
그것의 생명은 끝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자마자 죽을 것이고
큰 악어라도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태양에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일 강을 만들고 그 가운데 왕노릇을 하고,
자신을 신성시했던 큰 악어는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된다.

이스라엘을 내쫓았던 애굽은
이제 “각국 가운데로 흩”어지며 “여러 민족 가운데로” 헤쳐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모으지만 “미약한 나라가 되어”
더 큰 강자에게 던져질 것이다.
바벨론이 애굽을 정복한다!
애굽은 자신을 최강자로 자처하며 신처럼 여기기까지 하였지만
가장 미약한 자로 전락한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
강대국도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