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1-12, 미혹의 역사에 흔들리거나 두려워 말 것)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이 말씀은 “미혹”이 있을 것을 전제한다.
본문의 내용에 의하면 두 단계의 미혹이 있다.

하나는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미혹이다.
이에 대해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두려움을 야기할 공포의 소식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두 가지가 문제다.
과연 “주의 날이 이르렀”는가?
이것이 가장 위험한 발상이다.
“주의 날”은 주께서 정하시는 날이요
사람은 그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주장하는 자는 무조건 주관적인 판단을 말하는 것이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해도 적어도 징조는 알 수 있다.
예수께서도 이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을 했고,
바울도 분명한 한 가지를 말한다.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일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면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문제는 “주의 날”이 과연 공포의 날이요,
그러므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말이 공포의 소식인가 하는 것이다.
“주의 날”은 분명 누구에게는 공포와 두려움과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은 심판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도가 아닌 자들에게 해당된다.
그들에게 “주의 날”은 멸망의 날이다.
그러나 성도에게 그날은 구원의 날이다.
특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미혹과 환난이 강하게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성도에게 “주의 날”은 그 환난의 날 뒤에 오는 구원의 날이다.
그러므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말은 두려운 소식이 아니다.
이 말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두 번째 단계의 미혹은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있을 심각한 환난을 말한다.
이때에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며,
그는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불법한 자”다.
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성도가 고난을 당할 것이며,
특히 “배교”가 일어나도록 사탄이 발악을 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미혹이다.
이 “악한 자”는 성도를 미혹하여 믿음을 버리게 하는 것이 목표다.
분명 배교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사탄이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에서 면하기 위해
예수를 버리고 사탄을 따르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최대의 미혹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을 “지금” “막는 자”가 있으며,
그 “불법한 자”를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사탄의 미혹이 고통을 수반할 것이기는 하지만
주 예수께서 그 사탄을 물리치고 벌하실 것이며
성도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번째의 미혹은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성도가 얼마든지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미혹이다.
주 예수께서 막으시고 도우시고 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단계의 미혹이든 성도는 흔들리지 말며 두려워할 것이 없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여 견디고 이길 수 있다.

아마도 언제나 경계할 것은
미혹이 엄청난 고난의 시기가 아닌 아주 편안한 날로 위장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편안함을 형통으로 간주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일이 잘 되면 다 하나님께서 이뤄주시는 것으로 정당화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성도의 정체성을 상실하면서까지 그 형통과 편안함을 좇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이 시대가 얼마나 교활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