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1-12, 환난 중에도 믿음, 사랑, 소망)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둘째 편지는
첫째 편지와 똑같이 시작한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바울이 이 교회를 생각할 때
맨 처음에 하는 것은 감사다.
그것은 편지 서두의 상투적인 감사는 아니다.
처음 편지나 이 편지 모두 사도는 동일한 내용을 감사한다.
감사의 내용이 없다면 그것은 사실 형식적인 수사에 불과한 감사일 수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바는 세 가지였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동일하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계속 믿음이 자라고 있다.
처음 편지에서 인정된 믿음의 역사가 계속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람이 “더욱” 진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다.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은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
그것은 우리 주께서 주신 유일한 계명이었다.
바로 그것을 데살로니가 교회가 준행하고 있다.
처음 편지에서 인정된 사랑의 수고는
이제 풍성함으로 더욱 자랐다.
믿음도 사랑도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 인정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는
보다 구체적으로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표현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은 성도에게 언제나 믿음의 본질이다.
그러나 소망은 반드시 “인내”를 전제하며 동반한다.
인내란 현재의 상태가 어려움을 의미하며
이때 소망은 결코 낙관적이 되기 어렵다.
소망은 아무런 과정 없이 자동적으로 다가올
장밋빛 미래에 대해 들뜬 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현실 세계를 엄연히 강조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오셨을 때 세상은 더욱 적대적으로 발악을 했다.
바로 그러한 세상에서 끝까지 예수를 의지하는 것이 인내요 소망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예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흔들림 없이 의지하는 것,
그 구원의 날이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기다리는 것,
그날이 너무도 확실하므로 그 과정에서 환난이 있어도 참고 견디는 것.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것을 하였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다 할 때
예수께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기뻐하심,
이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 아닌가.
그리고 나도 예수를 믿게 하신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