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1-12, 더욱 그렇게 행하라)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마지막 권면하는 말씀이 있다.
본문에서는 세 가지다.
“거룩함”과 “형제 사랑”과 성실히 “일”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말씀에 대해서는 잘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는 아마도 자타에 의해서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에게서 ―나 같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다―
그에 관해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틀림없이 성경에서 참으로 놀라운 장면 가운데 하나다.

사도가 권면하는 것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것을 이미 바울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그대로 행하고 있다!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와, 이러한 말씀을 들은 자들이 있다.
배운 대로 행하고 있는 자.
이보다 더 소망할 것이 또 있을까?
구체적으로 거룩함과 형제 사랑과 성실한 생업의 수고,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는 이들에게 뭘 더 하라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권할 것이 없다.
훈계할 것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은
“더욱 많이 힘쓰라”는 것이요 “더욱 그렇게 행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더” 해야 할 만큼 모자라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말했다.
배운 대로 “너희가 행하”고 있다고.
사도가 할 말은 단지 그것을 계속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아무리 잘 해도 만일 그것이 중단되면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믿음 생활의 핵심은 끝까지 일관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한 번 반짝 잘 하고는 이내 시들해지는 것은
어제 본문에서 말한 대로 흔들리는 것이요, 굳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들의 현재를 인정하고 칭찬하며
그것을 계속 잘 하라고 권할 뿐이다.
“더욱”은 지금보다 더 잘하라는 것이 아니다.
즉 지금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더욱”은 ‘계속’을 뜻한다.
신앙생활은 ‘계속’ 하는 것이다.

신앙은 계속 자라야 한다.
그것을 완성하여 이제 그쳐도 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도의 삶은 아무리 잘 해도 이제는 안 해도 될 일이 없다.
그것은 어떤 분량을 다 채우면 납품하는 물품이 아니다.
만일 신앙이 장성한 분량으로 자랐다면 그것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도는 “더욱 많이 힘쓰라” “더욱 그렇게 행하”라고 권면한다.

이렇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고
이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 위로를 받았”다!
아,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고 소망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