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1:1-13,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에스겔 선지자의 책에는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특별한 표현, 또는 현상이 자주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올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순간 이동’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환상으로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선지자를 아예 예루살렘의 현장으로 들어 올려 데리고 가셔서
그곳에 그를 두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을 목도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생생하게 현실을 인지하게 하시려는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먼데서 벌어지는 일을 망원경으로,
혹은 현대식 텔레비전 중계로 본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시청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관람석에 앉아서 예루살렘을 구경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데리고 가셔서 그곳 사람들 속에 있게 하신다.
심지어는 그들과 말하고 그들에게 말한 것이 즉각적으로 실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간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실제로 데리고 가셨다.

예루살렘 성전의 동문에 “백성의 고관” 25명이 있었다.
그들이 성전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종교적 행위에서 아마도 앞장 선 자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예배와 제사와 기도에서, 성경을 아는 지식에서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정반대였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다!
그들이 행한 악은
“성읍에서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운 일이었다.
그들은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켰던(8:17) 장본인이다.
그러면서도 성전에 와 있으니 그들은 종교적 위선까지 범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예언을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내가 칼로 너희에게 이르게 하고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에서 타국인의 손에 넘겨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라.
그들의 포학과 폭행은 약한 백성들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인데
그들이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보복하신다.
그들은 바벨론 앞에서 약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에스겔이 이 예언을 하자마다
바로 25인의 고관 중 하나인 “블라댜”가 즉사하였다!
아,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심판이 시행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곧 권능이다.
그냥 무서운 말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말의 능력이다.
그것은 그저 주관적인 심리적인 전술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물리적인 실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에스겔 선지자가 악한 고관 블랴다가 즉사하는 것을 보고 한 반응이다.
혹시 자기가 예언한 일이 눈앞에서 즉각 일어난다면
아마 자기도 놀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말의 능력에 새삼 엄청난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다가 그 말씀의 권능이 시행되자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것으로 포장하여 교만한 길로 가는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에스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말 대로 일어난 일로 탄식하며 슬퍼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는 남은 24명 앞에 우뚝 서서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더욱 무서운 엄포로 그들을 기죽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대면했다.
그는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고 울부짖는다.

에스겔은 9장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여 하시나이까”(9:8)
이 말씀을 들으면, 이 장면을 보면
정반대의 장면이, 사람이 바로 연상된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그대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회개를 하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화를 내며 자신을 죽여 달라고 대항한다.
에스겔은 요나와 얼마나 다른가!

그러나 또한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은 살리시고 요나는 내치는 차별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에스겔 같은 신실한 자뿐 아니라
요나와 같은 이기적인 자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쓰셨다.
나는 분명 에스겔이 아니라 요나에 가까운 자다.
그러면 더욱 자숙하고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배워야 한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을 판단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도 판단했다.
이러기가 얼마나 쉬운가!
내가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
얼마나 그저 낮아져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