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1-14,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에스겔은 유다의 마지막이 아직 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에 끌려온 1차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금 유다는 시드기야가 통치하는데
그는 11년을 버티지만 결국 마지막 왕이 될 것이다.
그것이 586년이다.
에스겔이 바벨론에 끌려온 동안에도
유다에서는 왕과 거짓 선지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아니, 거부한 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망하여
70년 동안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그 징벌을 달게 받아야만 다시 회복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순순히 잡혀가 거기서 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었고,
시드기야 왕과 그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매국적인 언사라고 몰아붙였다.
그렇게 유다는 계속 혼란 중에 있었다.

그러나 최종 멸망이 아직 임하기 7년 전, 593년,
즉 에스겔이 바벨론에 끌려온 지 5년째 되는 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셨다.
그는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30세부터 그 직분을 감당한다.
만일 1절에 “서른째 해”가 그의 나이를 말한다면 ―대부분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그는 유다에서 제사장으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제사장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설령 그가 유다에서 이미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광의 임재를
그가 지금, 바벨론에 끌려와 5년을 포로로 지내는 중에 그발 강가에서 보게 된다.
예루살렘이 아니다.
성전이 아니다.
바벨론의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 끝나고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
―아니, 그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는 신비로운 일을 경험한다.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그에게 보인 것이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특별히 임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은 여전히 유다 백성 가운데 계셨다.
그들이 유다에서,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어도
하나님은 그 포로지에 그들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오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셨고, 권능의 하나님이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창조 이후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통한 히브리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를 인도하셨던
그 역사의 주권자로 여전히 바벨론 그발 강가에 계셨다.
저 예루살렘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애굽에 기웃거리며
하나님의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인간의 술수로 발악을 하는데,
하나님은 여기 포로들과 함께 계셨다.

그것은 에스겔이 대충 자기 주관에 의해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자기주장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의 위에 머물러 특별하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세세하고, 영화롭고, 너무도 분명하다.
이것은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그의 상상이 그려낸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유다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는 모든 역사를 주관하셨고
그리하여 거기서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에스겔은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