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13-3:5, 성도의 굳건함)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형통함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현세적 의미는 죄로부터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은혜를 입은 것이지
만사가 형통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하고 아름다운 질서에서 벗어나 있고
그에 반역하는 상태다.
그리하여 이생에서의 형통은
자칫 세상에 가장 잘 적응하고 편승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 뻔하다.
그것은 세상에 잘 보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받지 않을 전략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어디서나 고난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고난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러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성경은 거듭해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것을 기정사실로 말한다.
세상은 암흑에 있고 예수 믿는 이는 빛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성도는 하나님만을 섬기기 때문이다.
당연히 마찰이 있다.
그것은 억울하고 불편한 것이기 이전에,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사도 바울은 지금의 상태가 어떠하든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성도들은 우연히, 또는 정반대로 각고의 인간적 노력으로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의 고난은 성도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에 의지하여 굳건해야 한다.
환난 가운데 성도의 본질은 굳건함에 있다.

두 차원에서 굳건함이다.
하나는 “그러므로”, 즉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셨으므로 “굳건하게 서”는 일이다.
나는 하나님과 무관한 자가 아닌데,
나의 모든 현실이 하나님이 모르시거나 하나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현실에 마냥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이 아시며, 하나님이 이미 충분히 예고하신 고난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굳건하게 서”면 된다.

둘째는 이 굳건함이 성도의 의무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의지하여 굳건하게 서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를 굳건하게 하신다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바울은 기도한다.
그는 또한 미쁘신 주께서 성도들을 “굳건하게 하”실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한다.
그렇다.
성도의 굳건함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일이다.

즉 성도는 굳건하게 서야 하며,
성도를 하나님께서 굳건하게 하신다.
사실 모든 것이 이렇다.
성도가 순종해야 할 계명과 사명이 있고,
하나님은 그것을 감당하도록 도우시며 힘을 주신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도우시며,
성도는 그에 의지하여 그것을 준행한다.
이것이 성도의 굳건함이다.
그러니 성도는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