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11-6:8,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예수께서 믿음과 순종으로 보이신 큰 대제사장으로 되심으로써
죄인들이 안식을 얻는다.
그 안식은 결산을 거친 영원한 안식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믿음과 순종은 영원한 안식,
곧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어떤 조건이 아니다.
구원의 조건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뿐이다.
사람의 믿음과 순종은 그에 대한 마땅한 반응일 뿐이지
결코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믿음과 순종은 단 일회적인 자격증 획득 시험이 아니다.
믿음과 순종은 계속 자라야 한다.
“말씀의 초보” 또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가 있고,
“완전한 데”가 더 있다.
이것이 단지 교리나 신학 지식의 등급, 혹은 난이도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그러한 차원이 있다.
예수님을 죄인의 짐을 대신 지시는 구세주로 믿는 믿음은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이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자라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의 분량은
곧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께로 나아가는 믿음과 순종의 분량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아예 지식이 자라지 않아 믿음과 순종이 자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말씀을 도무지 배우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지식은 자라는데 믿음과 순종은 자라지 않는 수도 있다.
머리만 커지고 있고 삶이 더 깊어지거나 풍성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믿음은 계속 자란다.(자라는 것이다)
순종도 계속 자란다.(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는 믿음이 한때의 사건인 것을 넘어서
아예 잘못된 길을 걸어 예수를 부인하는 데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믿음과 순종이 자라지 않으면 과연 무엇까지 되는 것인가!
완전한 데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여전히 불완전한 데에 머문다는 뜻이다.
믿음과 순종은 생명이어서 자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자라지 않는다면 얼마나 믿음과 순종을 억누르고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완전함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주께서 바라시는 믿음과 순종의 자람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 원치 않으면 어떻게 그것이 실제로 되겠는가.
내 마음이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