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1-13, 믿음, 순종, 안식)

히브리서 4장, 특히 오늘 본문은 “안식”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이렇게 집중하여 안식을 말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안식은 글자 그대로 일을 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일을 한 뒤에 쉬신 것이 안식의 근원이다.
이것은 단지 일의 중단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안식은 단지 6일 일하시고
7일째 일을 중단하고 쉬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지창조의 완성 후에 온 안식이었다.
즉 안식은 중단이 아니라 완성을 의미한다.
일의 중단은 포기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안식이 아니다.
또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상태에서 잠시 쉬는 것도 안식은 아니다.

본문에서 안식과 함께 나오는 말은 ‘들어간다’는 단어다.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즉 안식에 들어가는 자가 있고,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들어갔다 나온다는 것이 아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나중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다.
안식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성으로서 최종의 상태다.
그 뒤에 또 일이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리하여 본문에서는 안식을 “결산”과 연결한다.

그러므로 안식의 여부는,
안식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는 여부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안식은 잠시 쉬는 것이 아니다.
계속되는 일과에서 갖는 휴식 시간이 아니다.
고된 일을 잠깐 멈춘 뒤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들리는
“휴식 그만!”과 같은 잔인한, 일시적인 쉼이 아니다.
안식은 영원한 “결산”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쉬어도 되고 안 쉬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아! 안식에 들어가지 않으면 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일을 계속 한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일이 계속 된다면 안식이라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일을 하는 여부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과 못 들어가는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
일은 정해진 기간이 있다.
일이 끝나도 누구는 안식에 못 들어가는 자가 있다는 뜻이다.
누가 그러한가?
믿지 못하는 자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다!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믿음과 순종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에 대한 반응이다.
전해들은 복음을 믿고 순종하면 안식에 들어간다.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결산이란 곧 믿음과 순종의 여부를 보는 것이다.
믿는지 순종하는지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다.
그것은 일과 업적과 공로가 아니다.
하나님은 일을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보시지 않는다.
믿음과 순종을 보신다.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속임과 거짓과 감춤이 없이
“벌거벗은 것 같이” 믿음과 순종이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하신다.
내 속을 다 해부하시고 판단하셔서
나의 믿음 없는 것과 내가 순종하지 못한 것이 다 드러난다.
믿음 없는 나, 순종하지 못한 내가
벌거벗겨진 채로 드러난다!

아, 지금,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그러한 해부와 판단을 받지 않으면
영원한 결산에서 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하루의 삶을 결산하지 않으면
영원한 결산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만 울려 퍼질 것이 아니다.
매일, 매순간 말씀하시지 않는가!
그 앞에 벌거벗고 나가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내 모습을 알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할 수 있겠는가!
아,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옵고,
나를 벌거벗기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판단에 감사하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그 안식을 위해 내가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