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1-6, 여호와께서 행하신 큰 일)

시편의 주제들 가운데 찬양은 가장 많은 시에 해당될 것이다.
한 편의 전체 주제가 회개나 탄원일지라도
그 구절들 가운데는 거의 모든 시에서 찬양이 나온다.
찬양은 성도의 모든 노래와 기도에서 핵심이다.

찬양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뢰는 것이 곧 찬양이다.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큰일”이 찬양의 내용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이것은 “뭇 나라 가운데에서” 들리는 말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하신 “큰일”은 성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성도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신 “큰일”은 무엇인가?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신 일이다.
가장 정확한 사건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유다 백성이 돌아온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그보다 1000년 전에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도 일어났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를 믿어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받는 일로 귀결된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만큼이나 놀라운 사건이다.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 귀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예표였고,
그것은 재창조였다.
천지창조와 구원은 동일한 창조의 역사요, “큰일”이다.
이보다 더 “큰일”이 있겠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세상에서,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일”, 가장 위대한 일을 경험한 자요,
그 사건의 핵심에 있는 자요, 그것의 목격자다.

그 일은 일어날 줄 몰랐던 일이었다.
430년 동안 노예로 있던 백성이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70년 동안 포로로 끌려간 백성을 누가 놓아주겠는가?
누가 죄인이요 원수를 위해서 자기 목숨,
그것도 흠 없는 의인의 목숨을 내놓고 죄인을 대신해서 죽고 그들을 살리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때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당연히 일어나는 자연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고서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큰일”이, 그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고 놀랍겠는가!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내 혀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 그런데 이 감격과 탄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있는가?
이제는 그 “큰일”이 평범한 일로 기억되고,
그 기적이 자연법칙처럼 보이는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죄인이 의인의 대속에 의해 구원받는 일은 자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을 위해 죽음의 고난을 겪은 것은
신화와 종교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특별한 일이 일상사로 희석화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의 일상이 이 기적으로 특별해져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고,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찬양하는 것이 나의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내 입으로, 내 지식과 감성으로,
나의 생업의 수고로,
인간관계와 환경의식으로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