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5:1-5, 여호와께서 두르심)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와 ‘여호와 이외의 것을 의지하는 자’.
즉 모든 사람은 다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의지한다.
신을 —만들어서라도— 의지하든, 돈을, 권력을, 사람을 의지하든,
자기 자신을 의지하든.
하나님께서 인간을 피조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존적 존재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의지의 대상과 내용에 변질이 생겼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일을 만나도 든든히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이 요동하지 않고 든든하신 분이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흔들리는 것은
그가 의지하는 대상들이 모두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만 창조주이시고 나머지는 모두 피조물이요
심지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피조물의 본성이 의존적인데,
그러한 의존적인 존재를 의지하니 둘 다 흔들릴 게 뻔하다.

본문의 시인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를
예루살렘의 지형으로 비유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시온산은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다.
예루살렘은 산들이 두르고 있어서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다.
물론 예루살렘의 지형이 완벽하게 굳건하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유다.
그리고 이 비유는 더 나아가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시온산과 예루살렘을 둘러싼 산들보다
더 안전한 보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을 강조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아,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 우리를 고이 두르고 계시다!
이보다 더 안전하고 든든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두르시는가,
나를 두르시는 하나님이 과연 든든한 분인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둘려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하나님이 나를 두르시는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기도 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돈이나 인맥이나 자신의 실력에 의해 둘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르심으로 안전한데도 자신이 다른 것에 둘려있다고 생각하며,
그것들을 의지하므로 그는 결국 안전한 데서 요동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모순을 범한다.

요동의 가장 현실적인 예는 죄를 짓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안전하게 두르고 계신데도 뭐가 모자란 듯이 불안하여
다른 것을 의지하고 다른 데서 돌파구나 도피처를 찾는다.
내가 지하철 계단을 급히 이동하다가
다른 사람의 팔목을 두른 연약한 장식이 내 가방에 걸려 끊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전날 선물을 받은 예쁜 장식이었다.
그가 급히 내게 와서 사정을 알렸을 때에 나는 무엇을 먼저 생각했는가?
하나님께서 두르시는 선하신 권능을 생각했는가?
나의 실수의 인정과,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변상의 약속…
내 마음속에서 이런 것이 즉각적으로 진행되었는가?
순간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그저 무사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는가?
나는 무엇을 의지했는가?
하나님인가, 일상에서의 무사함인가.
실수를 하여도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에 들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통감하고 책임지고 회개하는 안전함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둘린 안전함이다!—
인간적인 수를 쓰고 머리로 계산하고 상황을 모면만 하려는 불안함인가
—만일 그렇게 끝난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둘린 자로서의 행동이었으므로 불안함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이 약속을 믿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에 둘려 있으므로 요동하지 않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