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4:1-8, 영혼이 삼켜질 상황에서)

어제 말씀에 이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다.
이 시는 “다윗의 시”로 저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적혀있다.
어제 본문과 같이 고난의 상황에서 성전에 오르며 부르는 노래다.
다윗, 그만큼 고난을 받은 이도 드물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고난을 대적이 그의 영혼을 삼키는 상황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삼킨다는 것은 입속에 쑤셔 넣고 씹는 것까지 포함한다.
어떤 동물은 음식을 (산 채로) 입으로 집어넣고 자신의 위속까지 밀어 넣는다.
그 음식이 된 희생자는 목구멍 속에서 질식사할 것이다.
본문에서는 음식을 이빨로 씹는 과정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그렇다면 목구멍에 이르기 전에
입속에서 뾰족하고 딱딱한 이빨들에 물리고 짓이겨지고 묵사발 되어 죽는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떻게든 죽게 되지만 씹히는 과정까지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욱 비참한 일이다.
지금 다윗의 상황이 그렇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는가의 여부로
이 고난에서 해방될지의 가능성이 달린 것으로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면, 즉 “우리 편”이시면
그 모든 엄청난 고난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확히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는 여부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시기를 바라는 간구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겠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겠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면
내 영혼이 삼켜질, 씹힐 상황에서도 구원을 받는다.
나는 죄로 인해 참으로 비참하게 곤고한 일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다윗의 고난과 같은 심한 상황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면 다윗이 하나님의 편에 있으므로
나와 비교할 수 없는 고난에서 구원을 받은 사실을 생각할 때에,
내가 어떤 곤고한 상황을 만나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 정도의 고난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다윗이 그렇게 엄청난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고백하고
그 이름에 의지하는데,
나는 나의 그 경미한 사건들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시편의 말씀으로,
하나님은 ‘너의 그 조그만 일에도 나를 의지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되겠느냐’라고
내게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