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3:1-4,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면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속죄제물을 짊어지고 회개와 부끄러움과 죄에 대한 원통함이 절절한 애가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억울한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기도로 노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은 바로 후자에 해당되는 상황이다.

시인은 “심한 멸시”와 “조소”와 “멸시”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것의 출처는 “안일한 자”(거만한 자, 잘 먹고 잘 사는 자)와 “교만한”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은 온갖 평안을 누리면서 성도를 괴롭히고 있다.
그들은 오만하여서 자신을 높이고 성도들을 무시하고 홀대하며 웃음거리가 되게 한다.

이때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는 성전에 그냥 형식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원통하고 슬픈 노래를 하며 올라간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나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제사는 성전에 이르기 전 이미 도중에 드려진다.
그가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다.
그는 이때 무엇을 드리는 것이 합당한지 안다.
바로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편 51:17)

상한 심령이란 무엇인가?
대적들에게 당하는 고통의 아픔이 상한 심령이며,
무엇보다 이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상한 심령이다.
그것은 곧 “눈을 들어 주께 향하”는 것이며,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구원을 베푸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도 상한 심령이다.
그의 슬픈 기도, 간절한 간구가 상한 심령이다.
그의 간구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써만 구원이 가능하다.
나를 대적하는 오만한 자에게 같은 폭력으로 맞설 수 없다.
성경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서서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모든 상황을 아시므로
이 애통하는 노래와 간절한 간구를 다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시계로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나님의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으로 정하시므로
그것이 짧든 길든 성도는 그때를 오직 기다릴 뿐이다.
그리하여 그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은 ‘기다림’, 곧 인내다.
그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간구하는 기도는
자신의 다짐을 아뢰는 것이기도 하며,
잘 기다리도록 은혜를 베푸시기를 간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 ‘기다림’은 참으로 중요한 간구제목이(어야 한)다.
이에 반해 얼마나 기도가 성급하기만 한가?
지금 당장, 빨리 손을 쓰셔서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한다.
거기에 기다림이 빠져있기가 쉽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적을 물리치시고 아픈 것을 치료해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형통케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잘 “기다리”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 이것이 나의 기도제목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내 마음대로 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때까지 잘 기다리는 것,
이것이 성도의 아주 중요한 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