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1-17,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예수께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것은
그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같은 말로,
예수께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이기 때문에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 없다.
그 가변성은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며,
특히 인간은 자신의 내적 요동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변하고 변질된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주신다.
그 나라는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요,
예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다.

오늘 말씀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서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과,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의 생각, 결혼의 존대, 음행의 금지, 돈의 절제를 강조한다.
이 모든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바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자주 흔들리는 것이다.
이웃에게 잘 하는 때도 있지만 그 마음이 일관되게 지속되지 못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잘 하고 수가 틀리면 모든 것을 망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의지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주”와 “사람”(세상)의 차이는 “동일”함과 “흔들”림에 있다.
예수님은 나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도우신다.
사람은 나에게 잘 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속임과 배반으로 관계가 무너진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듯이 사람들도 내게 그렇게 한다.
서로 속고 속이고 배신하고 배신당한다.
둘 다 동일하지 않고 요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사람(세상)도 어쩌면 동일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모두 이기적이므로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그러나 사람의 적대는 전능하지 않다.
그리하여 일시적으로는 세상을 지배하고 성도를 위협하지만
그 자체의 요동으로 인해 그 적대적 능력을 발휘할 능력이 많지 않다.
그 요동은 예수의 동일함 앞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항상 내게 적대적인 세상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내게 어찌”할 수 없다!

아, 그러나 나는 세상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무서워한다.
주님의 동일하심과 전능하심을 보기보다
세상의 일시적인 적대성에 주눅이 든다.
그러나 사람을 보지 말고 주를 보며,
사람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을 “은혜로써 굳게 함”이 나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