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14-29, 하늘의 예루살렘)

믿음의 경주는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잘 살기 위한 한 가지 비결이 아니다.
믿음의 경주는 세상에서 사람의 일생 동안 계속되는 아주 긴 경기이지만
그 끝은 하늘이다.
또한 믿음의 경주는 1등부터 100등, 또는 10000등까지
상대적으로 구분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끝인 하늘에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하는 자, 둘로 나뉜다.
그것은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인 차이로 갈라진다.

믿음의 경주의 목적지는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거기에는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이 들어가는데
그들은 곧 예수의 피 뿌림을 받은 “온전하게 된 의인”이다.
그 경주를 주관하시는 분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약삭빠르게 자기 입맛에 맞게
하나님을 때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또 어떤 때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의 취향에 관계없이
긍휼 넘치는 구세주시며 공의로운 심판관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제사로 드린 거룩한 피로써만 죄인이 구원을 받는다.
그 이외의 길은 모두 구원의 밖이다.
곧 영원한 구원의 밖, 영원한 심판이다.

그 사이에 중간 단계는 없다.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 구분되는 그 사이의 수많은 등급은 없다.
오직 두 나라만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와 요동하고 진동하며 흔들리는 나라만 있다.
영원한 용서와 화해의 나라와
더 이상 영원히 속죄되지 않는, 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나라만 있다.
이 나라에 누가 들어가고 누가 저 나라로 떨어질까는
공의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 일체의 책임이 없는 운명이 아니다!
그 반대다.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믿음의 경주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과정이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아,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늘의 예루살렘은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나라다.
온전한 의인이 아니라, “온전하게 된” 의인이다.
하나님만이 온전하시며 사람은 결코 온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은 100미터 밖의 결승점에서 초시계로 기록을 측정하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그 경주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달리시는 분의 명령이다.
예수께서 나와 함께 달리신다.
내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를 온전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저 멀리서 팔짱을 끼고 결과만 측정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지금 나와 경주를 같이 달리는 분이다.
어제의 말씀이 이렇게 말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예수께서 먼저 십자가의 길을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 다 달려가셨다.
그리고는 그를 따르려는 나를 위해 그 길을 또 동행하신다.
아, 내가 어떻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 주를 보겠는가!
지금 내 경주로에 나와 함께 계신 예수께서 나를 격려하시고 훈계하시고 깨우치심으로,
나를 “온전하게” 하심으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하늘의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내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들어가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지금 바로 내 옆에 계시며 나와 함께 경주를 달리시는데
내가 마치 멀리 있는 심판관의 눈을 속이려는 듯이
이 귀한 삶을 대충 살려하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