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1-13,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앞 장에서 본 선진들의 믿음은 곧 “경주”와 같았다.
경주는 달려가야 할 목표 지점이 있고,
그리고 그것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관중들 앞에서 벌어지는 시합이다.
세상 경주에서의 목표란 반드시 등수와 관련되지만
믿음의 경주에는 등위의 우열이 없다.
목표에 도달한 여부가 중요하지
그것을 1, 2, 3 ··· 등으로 구별하여 우대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이 경주의 관중들은 구경꾼이나 내기꾼이 아니다.
그들은 “증인들”이다.
경주의 진행은 주최자, 곧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는데,
증인들은 심사의 공정 여부를 감시하는 자가 아니라
경주자들이 달리는 고된 모습을 응원하며 감사하고
특히 모든 과정을 다 기억하여 증거를 남긴다.

경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다.
그것은 돈을 벌거나 자신의 흥미를 즐기는 놀이가 아니다.
믿음의 경주는 생명이 달린 인생에서,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경주다.
이 경주의 목표에 도달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그 영원한 심판에 처해진다.
그것은 평생 동안 이어지는 고된 경주다.
그래서 끝까지 그 경주를 마치도록 오로지 인내해야 한다.
이 경주의 시간적 길이가 아주 길기 때문에 —평생, 그리고 결과는 영원—
경주자에게 일반적인 현상은 피곤과 낙심이다.
지치고 그래서 도중에 경주를 포기하려는 의기소침함에 빠지기 쉽다.
어쩌면 모든 경주자가 이러한 순간과 과정을 만난다.
그리고 이것을 끝내 이기는 자가 목표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때 이 피곤과 낙심을 잘 이기도록 돕는 이들이 “증인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경주과정을 다 증거로 남긴 자들이므로
그것을 상기하게 할 것이요,
그들 자신의 경험, 특히 어떻게 그 피곤과 낙심을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으로 이겨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경주자들을 위로하고 다시 힘을 내게 한다.

이 믿음의 경주는 평생 지속되어 경주의 준비와 과정이 하나라고 할 정도다.
그리고 경주를 연 주최자는 선수들을 가지고 놀거나
그들에게서 무슨 이익을 취하려는 자가 아니다.
그는 모든 경주자가 다 목표점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가장 안타까운 것은
경주에서 그 피곤함과 낙심 때문에 좌절하고
경주를 그만 두고 심지어는 이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경주자들이 그 긴 경주를 끝내 잘 감당하도록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
이 훈련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징계”다.
이것은 경주가 다 끝난 뒤에 실패한 경주자에게 가해지는 벌이 아니라,
그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적절한 도구다.
징계는 성공적인 목표 도달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다.
세상의 경주에도 반칙자들에게 주는 징계가 있기는 있다.
그것은 단지 공정함만을 위한 사무절차이지
경주자 개인에게 향한 인격적인 자비가 아니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징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자비다.

경주 자체가 피곤하고 낙심되는 과정의 연속이지만,
이 징계는 그 낙심을 부가하는 더 힘든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다.
오늘도 내게 이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옵고,
그리하여 끝까지 경주를 감당하기를 원하나이다.

(어제 고된 지리산행을 무사하게 마치도록 모두에게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일주일은 지속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