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32-40,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믿음의 사람들을 예시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살다가 그들의 길로 갔다.
그래서 세상이 이긴 것 같고 세상의 법칙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에 역류하며 그것이 결코 세상의 원래 법칙이 아님을 증명한 자들이
또한 많이 있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권세가 무엇인가?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과 그것이 사라지는 죽음이다.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요 정의요 기준이요 목적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첫 사람의 범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세상이다.
그래서 그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세상과는 다르다.
많은 결함과 왜곡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즉 물리적·경제적 세계만 가치로 인정된다.
모든 것이 자연에서 나왔고 자연이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타락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관이다.

거기서 법칙은 강자의 지배력이요,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로는 다수의 지배담론이다.
옳고 그름은 목소리의 크기로 결정된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바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요,
세상이 보는 것을 보지 않는 자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다.
믿음은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아무도 볼 수 없는 하나님,
즉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며” 살게 한다.
믿는 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아 세상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멀리서, 미리 본다.
지금도 그러하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통계, 물리적인 실험 결과만을 진리로 여기고 산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때가 되어 이루어질 때에
눈에 보이는 세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세계를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그때,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넘칠 것이다.
믿었던 자들은 감사와 감격과 찬양으로 그날을 맞을 것이요,
믿지 않던 자는 당혹과 부끄러움과 공포로 그날을 피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더한 것을 본다.
바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며”
믿는 자는 산다.
그리하여 세상이 전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의 기쁨을 위해 성도는 지금을 산다.
그것은 얼마나 다른 삶인가!
그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세상이 어떤 권력과 술수로도
성도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며 사는 것을 못하게 할 수 없다.
세상은 결코 성도가 하나님 없이 살게 하지 못한다.
엄연히 계시는 하나님을 세상은 보지 못하여
자신이 주인인양 극도의 거만함으로 살든지,
아니면 신이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돌과 나무를 신으로 삼고,
조금 세련되게는 철학과 과학을 신으로 숭배하며 공허하게 산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며 사는 성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거만함과 공허함,
그것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보지 않고— 세상을 사는 자들의
내용이요 결국이다.
허상을 실체로 알고 사는 거만함과
실체를 모르고 사는 공허함은
모두 실체 앞에서 무너진다.
그것을 무너지게 하시는 실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이 믿는 이를 감당하지 못함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 믿음이 없으면
세상이 그를 감당하고 만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하나님 없이 사는 자를
세상이 감당하기가 얼마나 쉬울 것인가!
항상 여기 계시는 하나님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관하게 사는 자를
세상이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오늘날 믿는 이들이 세상이 감당하기 쉬운 자로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 살기 때문이다.
그 반대가 진리요 정답이다.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며 사는 것,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