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1-10, 비유로서 장막)

율법이 규정한 제사장 직무와 예수님의 관계는
첫(옛) 언약과 새 언약, 첫 장막과 둘째 장막으로 설명된다.
처음에 주어진 것은 임시였고
둘째로 주어진 것이 최종의 완성된 형태다.
전자는 “모형과 그림자”요
후자가 본체요 원형이요 진짜다.
오늘 본문에서는 첫 장막을 “현재까지의 비유”로,
둘째 장막을 첫 장막의 “개혁”으로 설명한다.

“비유”는 설명을 위한 도구다.
첫 장막은 둘째 장막을 위한 도구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후자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렇게 하도록 예비되었다.
처음 것으로 잘 할 수 있었는데 문제가 생겨서 둘째 것이 졸지에 마련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전자가 후자를 위해 예비되어 있었다.
후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전자를 보여주셨다.
그것은 “육체의 예법”이었으며 결국 “개혁”될 것이다.

어제 본문에서는 첫 언약이 계속되는 가르침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라면
새 언약은 그러한 과정이 필요 없는 상태로 말한다.
이제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고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기 때문이다.
첫 언약은 흠이 있고 새 언약은 무흠하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육체의 예법”과 “개혁”으로 대비한다.

육체의 예법이란 간단히 말하면 ‘형식’이라는 뜻이다.
흠이 많은 제사장들을 세우신 이유는
그들과 짐승제물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기 때문이 아니라,
구세주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형식이요 예법으로서다.
율법의 규정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죄를 다루시고 용서하시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를 위한 도구로 율법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개혁할 때”가 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모형과 그림자가 원형과 본체와 진짜로 개혁된다.
제사장들의 짐승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물로 개혁된다.
율법대로 대제사장이 피로써 제사를 드리고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행동이 그를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다.
대제사장, 그는 죄인이다.
그러나 죄 없는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리심으로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을 가르셨다.
둘 사이를 왕래하고 화평하도록 막힌 담을 허셨다.
예수님은 죄인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게 한 진정한 중보자다.

그러므로 이제 젖을 먹다가 단단한 음식까지 먹도록 성숙한 자는
이 비유들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초등학문에 해당하는 비유에서 그 비유의 본질로 더 나아가야 한다.
앞에서 “완전한(=성숙한) 데”로 나아가라는 말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었다.
비유가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해 그 뜻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새 언약의 개혁은 예수와 같이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첫 언약의 예비를 통해 진리를 알게 하신다면,
새 언약은 진리를 살게 한다.

아, 그런데 내게 새 언약을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옛 언약 아래 사는 것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