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7:11-19, 불멸의 생명의 능력)

멜기세덱에 관한 교훈이 계속되고 있다.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에 단 두 번 —창세기와 시편에서— 언급되어
아마도 구약시대와 초대교회에서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윗이 시편 110편에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을 언급할 때
그는 이 영적 진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바로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히브리서가 기록되고 있는 초대교회의 교인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를 믿는 성도는 이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율법을 초월한 구세주의 오심은 신약의 발명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보여주신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요,
복음을 이해하고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지식과 믿음의 여부를 “말씀의 초보”와 “완전한 데”로 구분했다.
“말씀의 초보” 또는 “젖을 먹는” 단계를 벗어나
“완전한 데”, 즉 “단단한 음식”과 “장성”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다.
멜기세덱이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는지,
그리하여 예수가 “레위 계통”의 임시적인 “제사 직분”이 아니라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지각을 사용”한 자다.
이것이 초보에서 벗어난 완전함이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은
매번 양과 소를 잡아 일시적인 제물만 드릴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다.
다윗은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을 말할 때
레위 지파에서 볼 수 없는 영원한 제사의 직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예수께서 그 직분을 감당하셨다.
예수께서 자신을 드리신 제사야 말로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 죄인들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하여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었고
—예수께서 죄의 삯인 죽음을 치르셨음으로
죽을(죽은) 죄인이 예수 안에서 살아난다—
그보다 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심으로
이미 말씀하셨던 부활이 성도들에게 일어날 것을 확증하셨다.
예수는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시다!

예수를 믿는 성도가 예수께로부터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받는다면
그는 기꺼이 연단과 고난을 받을 수 있다.
불멸의 생명이므로 고난을 받다 죽어도
성도는 부활하여 살아난다.
고난 받다 죽을 것을 염려하는 것이 “초보”요
고난을 받아도 불멸의 생명이 조금도 상하지 않을 것이므로
기꺼이 예수를 위해 고난과 연단을 받는 것이 “완전한” 수준이다.
이 지각과 믿음과 순종에서 선악의 분별이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선이요 모르는 것이 악이며,
그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
이것이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