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1:1-19,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어제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역사가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서술은 그의 업적이 아니라 그의 죽음에 관한 것이요,
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에 반해 오늘 다윗의 역사는 얼마나 다른가!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언급되고
백성들의 충성과 다윗의 신실함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나온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이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가니라”
여기서 무엇보다 근거와 원인이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형통과 강성과 번영이 만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데도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우연이거나, 마귀의 장난이거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이다.
아, 사람은 얼마나 근거와 원인보다 결과만 중시하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형통하기를, 강성하기를, 번영하기를 얼마나 바라는가!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결과로 점점 강성하여가기를 다 바랄 것이다.
그러나 강성의 결과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방식, 차원의 모습일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결코 강성하지 않으셨다.
선한 선생으로 오신 분이 죄인의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서 수치스럽게 죽었는데
그것을 누가 강성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써만 죄인들을 구속하셨고
그리하여 강성함이 입증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귀결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을 것이요,
거기서 죽지 않고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요,
그리하여 그는 살아남지만 죄인들의 구원은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강성함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음에서 분명하다.
다윗이 최종적으로 온 백성에게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을 때
그들은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전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다윗에게 여러 용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였다.
그것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증거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증거로 들고 싶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기쁨, 평안, 형통, 건강, 치유, 기적.
그러나 그러한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증거로 끝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면
그거야 말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다.
다윗에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증거였다.

그러므로 내가 형통과 강성과 번영을 바라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는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