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5:1-6:81, 장자의 명분)

고대 세계에서 계대는 장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경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전 세계의 왕조의 역사에서 그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의 의미를 상대화하며,
또한 다른 의미에서 절대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야곱)의 장자는 르우벤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르우벤을 낳은 어미 레아는
원래 야곱의 부인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야곱이 라헬을 좋아해서 그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장인(겸 외삼촌) 라반의 계략으로 자신의 첫째 딸 레아를 신방에 들여 넣으며
일이 그렇게 되었다.

레아는 야곱의 첩이 아니라 부인이다.
라헬도 부인이다.
이 두 여인의 두 여종들은 야곱의 첩이 되었지만
네 여인에게서 낳은 열두 명의 남자가 모두 야곱의 아들이다.
누구는 적자, 누구는 서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르우벤이 장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혀 장자의 명분을 빼앗긴다.
장자가 장자답지 못하면 장자가 아니다.
처음 태어난 아들이 무조건 장자로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장자에 합당한 자여야 한다.

역대상은 요셉의 장자권을 명확하게 말하는 유일한 책이다.
그의 어미 라헬이 원래 야곱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여인이므로
그에게서 낳은 요셉이 장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갔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총리가 되고 기근 가운데 부형들 모두를 구원하였으므로
그 권위에서 가문의 가장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장자의 명분은 르우벤에서 요셉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이 장자권과 무관하게
“주권자”는 유다 지파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명시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왕국이 되기 훨씬 전에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며 한 예언이다.
그에게서 “규”(홀)와 “통치자의 지팡이”가 나올 것을 야곱은 본 것이다.
그 축복대로 이스라엘의 왕권은 열두 형제 가운데 유다 지파에서 대대로 이어갔다.
첫 왕이 베냐민 지파 사울이었는데도,
묘하게 둘째 왕(다윗)은 유다 지파에서 나왔다.
그리고 남북으로 왕조가 분열되어 북이스라엘은 왕조가 대혼란을 겪는데도
남유다는 끝까지 다윗, 즉 유다 지파의 자손으로 이어진다.

요셉이 장자의 명분을 가졌다는 말은 어떤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요셉의 장자인
―이 경우에도 차자이면서 야곱의 축복으로 장자가 된―
에브라임 지파다.
에브라임 지파는 유력한 지도적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러나 또한 반대자 역할도 종종 했다.
결국에는 북이스라엘의 주역이 된다.
장자의 명분을 요셉 집안이 얻었지만
르우벤과 같이 장자답지 않으면 그 의미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

르우벤의 장자권이 요셉에게 넘어간 것은
또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이
얼마든지 다른 민족에게로 넘어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범위가
이스라엘이 생각한 것보다 얼마나 광범위한지 명시되었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그것은 완전히 성취되었다.
오늘날 누구도 먼저 예수를 믿었다고 우월할 수 없다.
누구라도 먼저 믿은 자보다 늦게 믿은 자다.
그리고 예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장자란 무엇인가?
장자다운 자가 장자라는 사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노력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나의 자격에 무관하게 주시지만
나는 은혜를 받은 자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자로 살아야 한다.
장자의 명분을 장자답지 않은 자에게서 취하는 것을 본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저 겸손하고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