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8:1-21, 오늘과 같이 하면)

성전 건축의 준비가 다 끝났다.
아니 마지막 한 과정이 남았다.
성전 건축을 담당할 솔로몬에게 이 모든 준비물을 인계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에 앞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이스라엘 모든 방백들에게 명령하여
“솔로몬을 도우라”고 하였다.

다윗은 솔로몬을 불렀다.
“내 아들 솔로몬아”
이것도 앞에서 이미 한 일이다.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그러나 이번에는 솔로몬을 격려하고 성전 건축의 사명 감당을 상기시키는 것 외에도
더욱 중요한 마지막의 일이 있다.
바로 성전의 설계도를 전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솔로몬이 할 일을 덜어주기 위해 다윗이 미리 한 것이 아니다.
또는 솔로몬의 능력이 미덥지 않아서 노파심으로 모든 것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설계도를 주셨기 때문이다.
성전 건물의 설계도와 모든 기물들의 양식은
다윗의 재능이나 의도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모든 부분에 대해 지시하신 것과 같이
이번에도 다윗에게 모든 지시를 하셨다.
다윗은 그것을 솔로몬에게 전한다.
만일 그것을 전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다윗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었다.
“여호와께서 ··· 내게 이르시기를 ···
네 아들 솔로몬 그가 ···
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과 같이 하면 ···”
이 말은 솔로몬 자신에게 직접 해당되는 말씀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해야 한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오늘과 같이”다!
아, 젊은 ―아직 어린― 솔로몬이
그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었다.
그것을 “오늘과 같이” 하라고 명령하신다.

아, “오늘” 잘 하는 자는 얼마나 복된 것인가!
오늘 잘 해서 그것이 앞으로의 기준이 되는 자는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아직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래에 더욱 잘 해야 기준을 만족시킬 것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불안하고 고된 수고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늘” 잘 한 자는
이미 그 기준이 분명해졌으므로 “오늘과 같이” 하면 된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분명한 소질은 변질이다.
인간이 가장 잘 하는 것은 도중에 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하지만 중도 포기하고, 그냥 중단할 뿐 아니라
더 나쁜 쪽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현상유지조차 힘들다.
그런데 기준이 될 그 최고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정성을 다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나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이 분명한 이 일은
내가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을 다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그것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감화하신다.

아, 나는 과연 “오늘과 같이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큰일 날 것이다.
나의 기준은 아직도 미래에 있다.
나는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더욱 의지하여
오늘, 그 기준에 더욱 가깝도록 애써야 한다.
나는 “오늘과 같이”가 아니라
‘오늘은 좀 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지금까지 “오늘과 같이 하면” 되는 정도로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오늘은 좀 더’ 잘 하는 자로 살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