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8:1-17,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다윗 왕은 가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 정점에 서있다.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나라의 기반을 든든히 다졌고,
대외적으로도 영토를 넓히고 이스라엘에 유리한 국제관계를 형성했다.
안팎으로 이스라엘은 균형 잡히고 강하고 견고해졌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블레셋, 모압, 소바, 아람과 싸워 가는 데마다 승리를 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곧 영토와 사람들과 군사 장비의 획득과
이후의 조공까지 확보하게 한다.
연이은 승전은 다른 나라들이 이제 싸우지 않고도
이스라엘에 화친을 청하며 조공을 받치는 결과도 야기한다.
하닷에셀과 하맛이 그렇게 하였다.
그리하여 성경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고 결론을 짓는다.

전쟁을 통해서나 자발적인 화친관계로서나
나라 사이에 승패와 강약이 결정되는 것은 사실 썩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승자는 좋겠지만 패자는 큰 고통을 겪는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전쟁으로 얼룩져 있고
인간의 비극이 거기서 저질러졌다.
만일 승패의 관점으로만 이스라엘의 승리를 본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못한 판단일 것이다.
빼앗긴 땅, 종으로 끌려간 사람들,
발의 힘줄이 끊긴 말들, 다 빼앗긴 병거와 병력,
아! 죽임당한 수많은 사람들.
이 비극을 자국의 승리의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

우선 이 승리는 다윗과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 전쟁과 관계들은 하나님의 전쟁이었고 관계였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징벌이었을 것이다.
가나안 정복이 가나안의 7부족의 패역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듯이
블레셋과 모압과 소바와 아람과 하닷에셀과 하맛과 에돔과 암몬과 아말렉의 패배와 복속은
우상숭배와 영적 미혹과 각종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것이다.
그런 한에서만 이스라엘의 승리는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분명히 그러하였을 것이라는 증거는 다윗의 내치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만일 영웅 행세를 하는 어느 왕이 국제적으로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뤘지만,
국내적으로는 결국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억압하고 나라의 살림을 찌들게 하고 자신의 부만 쌓았다면,
그의 대외적인 공적은 전혀 의미를 얻지 못한다.
한마디로 그는 독재자요 국제적인 범죄자다.
그러나 다윗의 외정적인 승리와 업적은
이스라엘의 통치에서 나타나는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한 사실에서
다윗은 일관된 빛과 의미와 영예를 얻는다.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행한 정의와 공의는
곧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의 근간임을 입증한다.
그러면 전쟁에서의 승리와 조공을 통한 화친도
역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연속임을 당연히 추론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의 모든 내용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 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뤘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종했다는 뜻이다.
형통과 승리와 획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정의와 공의”,
즉 하나님과 동행함과 하나님께 순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