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6:23-43, 온 땅이여)

다윗 왕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여
미리 준비한 장막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레위 사람을 세워 그 궤 앞에서 감사와 찬양으로 섬기며,
온 백성이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과 베푸신 법도를 영원히 기억할 것을 촉구하였다.
단지 정치적 왕국의 통일과 국민의 규합만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구심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임재하시는 거룩한 상징이다.
그리하여 왕으로부터 군사, 행정, 종교, 모든 영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 모두가
그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다윗은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온 언약궤로
이스라엘만의 잔치를 벌이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도자들과 백성들 모두에게 할 일을 말하고
그것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세워가고 있지만
다윗이 생각하는 공동체의 범위는 이스라엘을 훨씬 넘어선다.
다윗 왕은 선언한다.
“온 땅이여”!
‘이스라엘 땅이여’가 아니다.
요단 강이여, 갈리리 호수여, 이제 400년 만에 획득한 예루살렘이여,
더 소급하여 시내 산이여, 홍해 바다여가 아니다.
“온 땅”에게 다윗은 명령한다.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어느 지역의 민족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먼저 선택하셨지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모든 민족 중에”, “만민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만국”과 “모든 신”과 “여러 나라의 종족들”에게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을 돌리도록, 하나님께 돌리도록 촉구한다.
“하늘”과 “땅”과 “모든 나라”와 “바다”와 “밭”과 “숲 속의 나무들”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모든 생태계,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아, 이것은 나의 의식이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며,
나의 언어가 무엇까지 말해야 하며,
나의 기도제목이 얼마큼 광범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아, 그런데 나는 기껏 나 자신만을 생각하기에 급급하며,
나에 대해서만 말하기를 연연하며,
나를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으로 전전긍긍하지 않는가!
나의 생각이 너무 좁고,
나의 언어가 너무 상상력이 빈약하고,
나의 기도는 너무 짧다!

내가 걷는 길에 나무들이 있고 새가 지저귀고
하늘에 구름이 해가 바람이 있다.
내가 듣는 소식에 난민들의 신음이 들리고
전쟁을 준비하는 독재자의 광분이 있고
매연과 쓰레기와 미세먼지와 소음으로 고통당하는 피조물의 탄식이 들린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생각과 언어와 기도의 내용이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