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6:1-22,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첫 번째의 실패는 한 번의 실패나 두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한 번의 실패란 첫 번째 실패하고 그 다음에 포기한 경우요,
두 번의 실패란 첫 번째 실패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두 번째도 역시 잘못한 경우다.
첫 번째 실패한 언약궤 운반은
두 번째에 제대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 마무리가 ‘제대로’ ‘아름답게’ 된 것은
“규례대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곧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무사하게 옮겨진 하나님의 궤.
그러나 운반의 목적은 오벳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
즉 예루살렘으로의 이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운반은 다른 더 큰 목적을 위한 중간 과정이다.
그 궤는 장막 안에 위치할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 장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란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심, 현존하심이다.
그것을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알리기도 하시지만 ―구름과 불기둥으로―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가?
물론 무소부재하신, 즉 안 계시는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죄 짓는 것을 다 보시고 다 아신다는 뜻이지
그것에 동참하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신다는 의미에서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나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의 자리에 동석하심으로써
그 죄를 정당화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기쁘게 함께 하시는 것이 있고
안타깝게 탄식하며, 또는 분노하시며 나를 지켜보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줄을 알 수 있을까?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장막 가운데서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부터 했다.
그리고 레위 사람을 세워
그 궤 앞에서 섬기며 하나님을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하나님의 행하신 기사와 이적과 그의 법도를 영원히 기억할 것을 촉구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마땅한 일들을 했다.
그는 언약궤를 옮긴 목적을 그렇게 이루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마땅히 함께 계실만한 일을 행함으로써 분명해졌다.

이것은 나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답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에 합당한 삶이다.
물론 이것은 결코 나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아니고는 결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궤 앞에 있는 것이다.
내 삶, 나의 하루는 그 언약궤 앞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영원히 기억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