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4:1-17,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블레셋에게는 가소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전왕 사울 때에 다윗은 블레셋에서 정치적인 망명을 해야 했고,
그때 그는 거의 미친 사람과도 같이
—물론 다윗의 연기였지만— 행색이 형편없었다.
원래 다윗은 블레셋에게 가장 주의와 경계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육박하는 거인이었다.
그러나 다윗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이제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자신을 공공연히 노리고 있는 적국에 추종자도 없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블레셋은 스스로를 승자로 여겼을 것이다.
다윗을 보복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윗이 정치적 회복을 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블레셋 대 다윗이 아니라,
블레셋 대 이스라엘로 본때를 보여줘야 할 때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더 이상 홀로 쫓기는 자가 아니다.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세우는 장군과 용사들이 있다.
다윗은 7년 반을 기다려 이스라엘 전체 백성의 지지를 확보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광야에서 쫓기던 시절이나 지금 왕이 되어서나
변함없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는 시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적어 옮기는 계시의 전달자, 곧 선지자였다.
그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이끌어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의 기도생활은 어떠한가?
본문에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왔을 때 다윗이 한 일이 무엇인가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군사적인 공격을 받을 때 왕이 할 ―하는― 일은 무엇인가?
긴급 안보위원회를 열어 사태를 파악하고
이미 정해진 유사시 계획을 점검하고
최종적으로 군 지휘관의 결의를 듣고,
그리고는 현대 미국식 영화대로 한다면
‘신이여 도와주소서’ 한 마디 하고는 암호화된 공격명령을 노트북에 입력하는 것,
이것이 행정과 정치 및 군통수권자의 일정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다윗은 안보위원회, 혹은 국방위원회, 참모회의에서 하지 않고
하나님과 했다.
그것이 달랐다.
그는 “하나님께 물어” 보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군 지휘관들의 자문이나 이미 수립된 대책을 들춰보는 일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께 물어”, 이것은 그가 기도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는 전쟁이라는 다급한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신속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께 무릎 꿇는 일을 제일 먼저 했고 그것을 가장 중시했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질문한다는 뜻이다.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다윗과 이스라엘에게는 유사시의 방책이 있었다.
블레셋이 공격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군사 교범이 있었다.
그 작전대로 하면 될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과 물어서 마련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정책은 하나님과 상의하여 수립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이 묻는 것은 ‘이것을 실행할까요?’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승리를 거뒀다.

블레셋에게는 많은 여운과 미련이 남는 전투였을 것이다.
그 미친 사람, 다윗에게 지다니.
그리하여 블레셋은 “다시 골짜기를 침범”하는 일을 감행한다.
이에 대해 다윗을 무엇을 했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다.
“다시”에는 “다시”다.
블레셋이 “다시” 공격하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갔다.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이번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번에 하나님의 답은 구체적인 작전 지시를 포함했다.
단지 ‘치러 올라가라’가 아니었다.
“마주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라!
그것은 단지 요령의 전수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어떻게 싸울 것―“곧 나가 싸우라”―을 명령하시고,
그리고는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어떤 작전을 수행할지 골라주시거나,
작전 수행의 명령을 내리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나가 싸우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다.

다윗의 기도는 “또”, 다시 하는 기도였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자기 뜻으로 바꾸기 위해
또, 다시 매달렸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의 기도에서 바로 이것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한 번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또”, 다시, 기도하지 못하고 한 번 아뢰고 지나간 기도제목들이 얼마나 많을까?
혹 여러 번 아뢰고 물었을지라도 다시금, 또 묻고 아뢰는 일을 계속 했는가?
그리하여 내가 전도를 위해 기도하다가 중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하나님께 다시 묻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하다가 실수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그보다도 하나님께서 “또”, 다시, 다시금, 분명히 말씀해주셨는데도
내가 그것을 순종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하다가 범한 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몰라서 지은 죄가 있었는가?
뻔히 알고도 탐심에 끌려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지 않는가?
하나님께 “또” ―언제나― 묻는 자는
하나님께 “또” ―언제나― 순종하는 자다.
다윗이 본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