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2:1-40, 그 중에서 나온 자)

계속해서 군대 지휘관들과 용사들의 목록이 나열되고 있다.
그 명단은 지파별로 기록된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이 되는 자들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울의 동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다윗은 사울의 대적자이며,
다윗의 왕위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지파를 배반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사울이 죽은 뒤에 7년 반 동안 다윗은
동족인 유다 지파에게서만 왕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제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여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임을 선언할 것이다.
그것은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는 일이었다.
즉 베냐민 지파에게는 이스라엘이 “사울의 나라”였고 자신의 지파의 나라였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다윗에게 넘겨준다.

사울에게는 아주 뛰어난 후계자, 요나단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날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전사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마도 다른 아들이나 자손들을 통해
얼마든지 왕위 세습이 가능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7년 반이 지난 지금도
“사울의 동족은 아직도 태반이나 사울의 집을 따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나온 자가 삼천 명”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베냐민 지파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각 지파마다 “다윗에게 돌아온 자”의 수가 언급된다.
다윗에게 돌아오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여전히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은 계속되었다.
“그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올 사람들이 아직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사울의 가문에서 왕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즉 “그 중에” 계속 남아 있는 자들과
“그 중에서” 날마다 “나온 자”가 여전히 대별되고 있었다.
7년 반의 시간은 바로 그 과정이 진행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된다.
이에 대해 가장 저항하는 지파였던 베냐민의 자손들은 어떻게 했을까?
성경이 그 변화의 과정을 세세히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아주 분명한 사실이 있다.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그 다음 왕이 될 때에
결국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유다와 동행한 지파는 오직 베냐민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열 지파는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도 규합되었다.
그들은 다윗 왕조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다.
지금 다윗에게로 돌아오는 일이 “날마다” 진행되는 일의 정반대 방향으로
다윗 왕조에게서 떠나는 일이 그때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에서” 베냐민 지파는 유다의 편에 섰다.

과연 누가 끝까지 가는가?
누가 끝까지 신실한 것인가?
오늘 본문에서 베냐민 지파의 아직 유보적인 태도를 보고 속단하면 안 될 것이다.
나야말로 사람들을 얼마나 빨리 판단하는지,
아마도 나의 그러한 판단은 거의 다 틀린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의리와 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의 왕이 되는 것은
정치적 투쟁 과정의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사울의 정치적 공격에 대해 조금도 정치적으로 맞서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이 죽은 것을 결코 자신이 유리해지는 기회로 삼지 않았다.
그가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셨다.
그가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지파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도 지금 다윗의 왕위를 인정하는 것,
즉 다윗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정치적 선택과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돌아오는 문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고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각 지파에 아직 여전히 사울에게 미련을 두는 자들이 있는 가운데
“그 중에서 나온 자”는 오늘 내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말해준다.
정치적 대세, 여론의 주류에 연연할 것인가,
아니면 그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면 “그 중에서 나온 자”가 기꺼이 되겠는가,
이것이다.
베냐민 지파는 서서히,
그러나 장기적으로 제대로 그렇게 한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