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57-75, 두 심문)

아직 그 밤이 계속되고 있다.
유월절 식사로 시작된 이 밤에
예수는 희생제물인 어린 양으로 자신을 드렸고,
제자들은 의미도 모른 채 빵과 포도주를 맛있게 먹고 마셨다.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을 이끌고 감람산으로 가서 밤새 기도를 했다.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생명을 건 절박한 철야 기도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예수께서 하는 기도의 자리에는 같이 있지 못했다.
그들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내 잠을 잤다.

그랬다.
한 밤에 두 행보로 길이 나뉘었다.
예수와 제자들의 행보는 둘로 갈라졌다.
가룟 유다가 그의 스승을 팔려는 음모를 행하러 군병들을 이끌고 감람산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는 잠잠히 그들의 체포에 몸을 맡겼다.
그것은 마치 순순히 죄를 고백하는 죄수와도 같다.
그러나 제자들은 위풍당당하다.
전에 보지 못했던 행동을 했다.
그것은 잘못된 공권력에 대한 폭력적 저항이었다.
잠잠함과 폭력 행위,
이것이 기도와 잠의 귀결인가?
아니다.
마지막 결론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잠잠히 순종한다.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자신을 내주었다.
그럼으로써 이루어진 것은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의 뜻인가?
아니다.
그들의 뜻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반면에 가만히 있지 않고 폭력적 저항으로 분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였던 제자들은
결국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기도와 잠에서 시작된 차이는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도망가는 것의 차이로 귀결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기도와 잠의 결과는 이 밤에 계속되었다.
예수는 밤중에 소집된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
그를 향한 유죄의 증언들이 난무했고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는 연기가 예수의 신성모독을 더욱 당연시했다.
그러나 예수는 침묵했다.
반면에 제자들, 그들 중 우두머리에 속했던 베드로는
공회의 바깥뜰에서 눈치를 보다가 그도 송사에 휘말린 자가 된다.
그에 대한 심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도 예수의 사람이라는 고소에 베드로는 격렬히 맞섰다.
베드로는 예수를 저주하며 맹세하고 그를 알지 못한다고 격분하며 자신을 변호했다.
그리하여 그는 살아남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사형의 길로 간다.

기도와 잠의 차이는 그 밤 내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침묵하고 잠잠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진 것은 공회의 뜻, 대제사장의 음모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예수의 십자가로 죄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제자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이룬 것은 목숨의 부지뿐이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던 밤에만 벌어졌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성도가 매일 밤낮으로 마주대하는 현실이다.
성도는 마지막 순간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내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 일의 감당은 예수께서 걸으셨던 기도를 통해서뿐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