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36-56, 한 밤 두 행보)

유월절의 밤.
1500년 전에 —지금부터는 35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애굽에 노예로 묵여있던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에서
양을 잡게 하시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구별하여
애굽의 모든 집을 치는 재앙을 면케 하신 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되는 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밤,
이 밤에 예수께서 출애굽 유월절의 어린 양 대속의 예표를 실행하시고 이루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빵과 잔을 나누며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친히 자신의 몸을 어린 양 희생제물로 드리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셨다.
유월절 식사 자리를 준비한 “성안 아무”개의 집에서,
그리고 감람산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 밤을 같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한 밤에 행보는 다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같은 밤,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예수께서 가신 길은 “기도”의 길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저기 가서 기도”하였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였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렇게 시작된 기도는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고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 기도의 자리에 데리고 가셨다.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그러면 그냥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인가?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아하.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한다.
이미 예수님은 자신의 상태를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깨어 있으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눈 뜨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로 포식을 한 뒤에 한밤중의 피곤과 졸음에 잠이 들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상황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들은 앉아서 깨어 있지 못했다.
예수는 베드로를 깨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아하.
“깨어 있으라”는 것은 “깨어 기도하라”는 뜻이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깊은 고민으로 죽게 된 스승을 위해 중보기도하라는 것인가?
아니다.
제자들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죄인들의 구원과, 그것의 감당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시험에 들 것을 염려하신다.

이 마지막 밤에, 이 유월절의 밤에,
더 이상 구원의 예표가 아니라 진실로 메시아를 통한 약속된 구원이 성취되는 이 밤에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셨고 제자들은 밤새 잠을 잤다.
같은 밤, 같은 장소에서.
한 밤의 두 행보는 그 이후에도 이어진다.
그것은 기도와 잠의 귀결이었다.

가룟 유다—그는 이제 “예수를 파는 자”다—가
예수께 입을 맞추어 군병들에게 그를 잡으라고 신호하자
제자(들)는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린다.
사실 유다와 열한 제자들의 행보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각기 유월절 식사 이후에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기도”하지 않은 점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음이 동일한 결과를 낳았다.
모두 폭력의 길로 간다.
유다는 예수를 강도 잡듯이 칼과 몽치로 잡고,
제자들은 강도가 하듯이 칼을 휘두른다.
기도하지 않은 자가 의지할 것은 사람의 힘, 무력, 폭력이었다.

기도하신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하는 일을 허용하셨다.
그것은 예수 자신에게 하는 폭력의 허용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의 칼 휘두름은 허용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폭력은 허용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신 예수의 마지막 귀결은 “성경”이었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 이것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지막 귀결은 “도망”이었다.
그것은 “예수를 버리”는 일이었고,
이 일에 “제자들이 다” 똑같이 했다.
열한 제자도, 가룟 유다도.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도.

나는 지금 이 마지막 밤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두 행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밤에 예수님과 ‘나의 행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예수와 함께 깨어 앉아 있지 못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많이 시험에 든 것, 아니 시험에 들기를 좋아했던 것은
모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의지하고 행한 것은 나의 무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다!
그 밤에.
아, 그것이 그 밤, 단 한번의 소행이 아니었다.
아주 자주 벌이고 벌였던 나의 고질적 행동이었다.
아, 나는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도록 그 짓을 했고,
아니 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회개하고도 또 그렇게 했다.
그런데도 내게 자비를 베푸신 예수님의 그 선하신 권능은
그 밤의 기도에서 온 것이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다.
나는 전적으로 나를 위한 기도—시험에 들지 않도록—조차 제대로 못하였구나.
이제라도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고,
말씀하신 대로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