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33-46,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예수님은 다시 비유로 말씀하셨다.
집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여행을 떠난 후에
추수 때에 종들을 보내자 농부들이 그들을 폭력적으로 박대하고
심지어는 주인의 아들을 보냈는데도 죽이기까지 했다.
예수님은 비유에 이어 질문을 하셨다.
바로 이 이야기의 결말에 관한 것이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사람들은 그 악한 자들이 진멸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그렇게 말할 정답이었다.
어떤 사람이 다른 답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이 악한 농부들에게 동정심을 갖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질문한 것을 넘어서까지 대답을 했다.
예수의 질문은 그 농부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대답은 “진멸”이었다.
이것으로 충분한 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음의 일까지 말했다.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포도원을 누구에게 맡길지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까지 대답을 했다.

예수께 잘 보이려고 묻지 않은 질문까지 답을 한 것인가?
아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질문이 없어도
그 비유는 그 다음 이야기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상식적이었다.
악한 농부들이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을 것이고
포도원은 신실한 다른 농부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나쁜 일꾼을 좋은 일꾼으로 갈아치우지 않겠는가!
주인에게 거역하고 엄청난 피해를 안긴 자들을 없애고
착하고 일 잘하는 일꾼들을 채용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도 상식적인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 질문에 아주 잘 대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결말이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그러했다.
그것을 잘 들으면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그것은 너무도 자명한 결과다.
이 비유는 따로 해설과 설명이 필요 없으며 중의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내용을 그 결과와 그 이후까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가운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바로 이 이야기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인 줄을 알았다.
사람들은 이야기의 내용이 어떠할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전개를 알아맞히었지만
그것은 아무리 분개할 만해도 남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그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이번에도 예수께서 묻지 않으셨는데 그들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다!’

그러나 참으로 모순적이다.
묻지도 않은 것을 자신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의 내용이 분명했고,
자신들이 어떠한 자인지도 그들에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분명한 상황과 지식에 한 가지 모순이 있다.
그렇게 분명하여 자신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부인하려 한다.
그들의 속내는 예수를 잡는 것이었다.
비유 이야기의 결과는 악한 농부들이 진멸하는 것이었는데,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는데,
그런데 그들은 자신을 진멸될 자로 여기기는커녕
이 분명한 이야기의 줄거리와 정반대로 예수를 죽이려 한다.

이 한 대목의 상황이 인간의 역사 전부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분명한 이야기를 쓰신다.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복음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분명한 진리다.
누구나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어떠한지 잘 안다.
복음은 그 자명한 진리에 대면하게 한다.
사실은 자신이 그 진실에 직면한 것을 사람들도 안다.
그러나 행동은 여전히 그 앎과는 모순된다.
자신이 진멸당할 자로 여기지 않고 예수를 죽이려 한다.
하나님이라도 제거하려 한다.

뻔히 알면서도 자신에 대한 적용은 언제나 빗겨가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아주 잘 알면서도,
자신도 그러한 줄 아주 잘 알면서도 결코 겸손해지지 않는다.
지식만으로는 복음을 따르지 못한다.
하나님께 부복함으로써만 믿을 뿐이다.
오늘은 어느 바리새인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