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7-34,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알리셨다.
제자들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초인적 영웅일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능욕과 십자가와 죽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알게 될
진리를 점점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때에 예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나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예수님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맹인 두 사람이 예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여
결국 예수님의 허락을 받는 장면이다.

두 장면 모두 예수님의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둘 다 똑같은 질문이며 내용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세배대 집안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갖기는 원하는 벼슬의 획득이요,
다른 하나는 맹인 두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께 눈을 뜨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다.

이 두 질문은
하나는 예수님의 거절과 제자들 사이에서의 분노를 야기했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고
결국 그들이 눈을 뜨는 것으로 귀결된다.
또한 이 질문들은 하나는 본인들이 알지도 못하고 요청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듣고,
다른 하나는 너무도 분명한 뜻으로 제시되어
예수님의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결국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는 십자가와 죽음을 말씀하시는 예수께
자기 아들의 출세를 간청한 것이었고,
두 맹인은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믿는 믿음을 입증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시종 부르면서
메시아이심을 굳게 믿고 있었고,
또한 자신들이 맹인으로서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과
예수께서 사람이 풀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질문 속에 그들의 믿음이 담겨 있었다.
두 제자의 어머니는 예수를 난세에 출세를 보장해주는 자로,
두 맹인은 예수가 오래전에 약속된 바로 그 구세주요
인간의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는 분으로 믿었다.

예수님이 바로 내 앞에 나타나시면 나는 무엇을 구할 것인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 믿음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이것이 믿음의 핵심이다.
기도를 제대로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예수께 간구하는 모든 요청이 기도인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경우만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