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13-30,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화요일부터 시작된 마태복음 묵상의 본문은
이번 주 내내 거의 “작은 자”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 “작은 자”의 가장 구체적인 예로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지목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고,
그 이유도 분명히 밝히셨다.
어린 아이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
이러한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오늘 본문은 그 말씀의 반복으로 시작한다.
제자들은 이미 “작은 자”에 대한 말씀,
곧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하며,
“큰 자”로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해야 함을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을 무시하고 꾸짖음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예수님은 다시금 “천국이 이런 사람―어린 아이―의 것이니라”고 강조하신다.

그런데 이 말씀 바로 뒤에 이와는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예수께 찾아온 “어떤 사람”은 계명을 잘 지키는 재물이 많은 청년이었고,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음을 환기시켰다.
이들은 스스로 완전한 자들이다.
모든 계명을 지킨 자,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그것을 근거로 무엇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 청년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께 물었는데,
그것은 정말로 영생을 얻는 길을 알기 위한 것보다
자신이 바로 그 “무슨 선한 일을” 다 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사실을 공인받음으로써 영생이 ‘따 놓은 당상’임을 확인하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정말로 그가 영생을 얻는 조건을 알기를 원했다면
예수님의 최종적인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갈 이유는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내린 답이 있었고 그것을 예수께 인정받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다른 예수의 답에 당황했을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최종적으로 하신 대답은 부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임에 틀림없다.

베드로의 질문은,
형식 자체는 부자 청년과 정반대로 구성되어 있다.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다.
청년이 ‘영생의 조건’을 물었다면,
베드로는 ‘헌신의 결과’를 물었다.
내용은 둘 다 똑같다.
나는 이만큼 잘 했는데 영생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사실이다.
즉 부자 청년과 베드로는 자신이 한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주실― 보상 사이의
‘공정한 거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투입과 산출의 공식이다.
이만큼 했으니 마땅히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들의 예상과 다른 대답으로 결론을 내리셨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즉 천국은 부자의 셈법, 곧 투자와 산출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즉 천국은 헌신과 희생의 분량으로 순위를 정하여
먼저와 나중이 결정되는 곳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천국과 영생에 대해 계산을 하고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큼의 투입을 해야 하는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신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는 말씀에 해당하는 자는
곧 “작은 자”요 “어린 아이”며,
곧 그들은 계산할 줄 모르는 자다.
큰 자들이 계산을 하며 어른들에게나 셈법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어린 아이가 “나중 된 자”요 결국 “먼저 될 자”다.
예수님의 생각은 부자 청년과 베드로의 계산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의 계산은 ‘자신을 높이는 자가 큰 자’인 공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도 제자들은 세상의 관례대로 계산을 한 것이다.

나는 분명 ‘어른’에 속한다.
늘 이것저것 따지고 재고 계산하고
수가 틀리면 얼굴빛이 달라지고 심장박동수가 올라가는 자다.
자신을 낮추지 않는 자다.
아, 내가 계산할 줄 모르는 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한 가지 소망을 예수님은 주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나는 또 어린 아이가 되는 법을 계산하여
그것을 위해 어떤 투입을 할까 주판을 열심히 튕기는데,
바로 그것은 사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참 못된 어른이다.
내 힘으로 어린 아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나 같은 구제불능의 ‘어른’도 ‘어린 아이’로 만드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서 저를 빚으시는 것에 순종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