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3:15-31, 반복적 죄를 깨뜨리는 계속적 개혁)

7월 24일의 성회에서 백성들은 다시 모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모두 같은 마음으로 회개하며,
또한 레위 지파의 지도자들이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조망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의 죄와 하나님의 긍휼의 끊임없는 반복이었다.
아, 그 연결고리가 중단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경에서 보기 드문 개혁이요
아름다운 공동체적 언약 갱신이 이루어지는 느헤미야의 사역은 과연 어떠한가?
성벽 건축공사를 마치고 하나님께 봉헌하며
유다 백성은 비로소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다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전의 역사에서와 똑같이 영적 부흥 뒤의 범죄였다.

두 가지 죄가 저질러지고 있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과 이방인과 통혼하는 문제였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도 이 사안은 별로 중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신앙적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의 질서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문제다.
생업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한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안식이 필요한 몸에 무리를 가하는 것이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함이 없이
자기 힘으로 최대한의 돈벌이에 매진하려는 과욕이다.
그것은 자신을 시간과 생업의 주인으로 삼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이방인과의 통혼은 어제 본문에서도 나온
“섞인 무리”로 인한 영적 혼합의 결과를 야기한다.
인종적 혼합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혈통을 보존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섞이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소홀히 여기며 세상을 좇는 것이다.

아, 시간만 흐르면 원류에서 이탈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말씀의 깨달음으로부터, 회개의 성회로부터 약간만 멀어져도
금방 다시금 죄짓는 일이 시작된다.
그것은 더 큰 패역함에 이를 것이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뒤에 살려달라고 부르짖은 다음에
하나님의 큰 긍휼이 임하여 구원을 받지만
이내 다시 죄로 이탈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반복적 죄의 악순환,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요, 인간의 본질이다.
아, 내게도 그렇다.
그러나 본문은 느헤미야가 이것을 어떻게 깨뜨리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바로 작은 죄에서 더 큰 죄로 향하는 흐름을 끊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를 위해 경계와 꾸짖음과 책망과 저주와 체벌과 맹세와 추방을 행했다.
특히 구체적인 방책이 아주 중요했다.
안식일의 상행위에 대해 말로만 훈계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 전에 “성문을 닫고” 보초를 세워 상인들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유다가 여전히 반복적인 죄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지만,
느헤미야는 계속적인 개혁으로 맞선다.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잘못된 것을 뜯어고치는 것만으로는 아직 개혁이 아니다.
계속되는 개혁만이 개혁이다.
하나님은 내가 예수를 믿으면 성도로서의 자격증을 발행하는 것으로 구원을 이루지 않으신다.
내가 예수를 믿고도 죄를 반복적으로 지으므로
하나님은 성령을 내 안에 내주하게 하시며 내 마음을 끊임없이 감화하신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를 개혁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다.
그러므로 나도 나 자신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다시금 개혁해야 한다.

오늘이, 이 한 주가 새로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죄의 반복되는 연결고리를 끊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나를 계속 개혁하도록
이 시간과 날들이 내게 주어진다.
오늘은 나를 개혁하는 날이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