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3:1-14, 말씀을 깨달으면 바로 즉시)

성벽을 봉헌하던 “그날” 유다 백성은 “모세의 책을 낭독”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에 대한 말씀을 “듣고 곧”
그들은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다.

봉헌식 이전, 7월 그 한 달 동안 온 백성이 말씀을 들을 때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 7월의 총회에서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거듭나면서
이제는 성벽의 봉헌을 할 때가 되었다고 모두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자신들의 부족함이 다시 발견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깨달은 말씀에 의하여 다시금 자신을 변화시킨다.

말씀의 순종은 모든 것을 깨달은 뒤로 미워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순종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 그러겠다고 다짐하는 꼴이 된다.
말씀은 깨달을 때마다 바로 즉시 순종해야 한다.
당연히 그 깨달음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깨달음은 ―사실상 앞으로도―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완벽함에 미치지 못한 것 때문에 지금 순종할 것을 미룬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느 때고 그 당시에 깨달은 만큼 순종하면 된다.
그렇다고 순종하기 싫어 깨달음을 고의적으로 뒤로 미룬다면
그도 참으로 어리석은 자다.

본문의 유다 백성들은 말씀을 깨달을 때 바로 순종했다.
이전에도 그러한 시간이 있었지만 당연히 그때 완벽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다른 깨달음이 있을 때 그에 따라 바로 순종하는 것이 도리다.
아직 깨닫지도 못한 부분을 순종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고,
또한 온전한 순종이 두려워 아예 깨달음을 거부하는 것은 불순종을 작정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