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1-36,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여)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이른 것은
유다 백성이 고레스의 칙령으로 첫 포로 귀환이 시작된 지 90여 년이 지난 뒤였다.
그런데 마치 지금 포로들이 돌아와 재건과 재배치를 이루는 듯이 보일 정도다.
1세기 가까운 동안 귀환한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셨던 언약 백성으로의 회복을 부분적으로만 경험하고,
그것도 다시 중단되고 또 시험에 들며
주위의 대적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70년 동안 죄의 심판을 받은 뒤의 완전한 회복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느헤미야의 귀국과 사역은 그것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에 의지해서만 하고 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신앙만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이방의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하시고
유다의 재건을 공적으로 가능하게 하셨다.
그로 인해 무너진 성벽이 중수되었고,
무엇보다 영적 회복이 뒤이었다.
말씀이 중심이 되고 순종이 그에 따랐다.

그리고 이제 유다는 거주를 재배치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것은 공사가 끝나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다 백성은 52일 간의 아주 빠른 공기를 마치고 그냥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전체가 모여 긴 나날 동안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
온 백성이 같이 회개했다.
즉 성벽 공사와 말씀의 회복을 마친 후
이제야 비로소 백성들의 주거지가 결정된다.

당연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지금은 왕조가 이어지지 못하고 페르시아에서 파견된 총독의 관할 아래 있지만
그럼에도 예루살렘은 유다의 중심이었다.
주거지 배치는 예루살렘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에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남은 백성의 1/10을 제비뽑아 함께 거주하게 하였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은 거주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지도자들 중심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재배치가 예루살렘만 중시하고
나머지는 천대하는 차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원칙은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옛날부터 조상들이 기업으로 물려받고 물려주던 것이
계속 유지됨을, 존중됨을 의미한다.
신앙적으로, 행정적으로, 방위의 측면에서 예루살렘이 중요하지만
나머지 지역이 예루살렘의 들러리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지역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이 각 백성에게 주신 거주지요 땅이요 기업이다.
예루살렘에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거주민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나머지 지역에는 그러한 지도자들이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도 흩어져 살았다.
전에도 그러했다.

근본적으로 중심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중심의 주변에 위치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대체하여 중심노릇을 하지 못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 아래에, 그 주변이 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중심 주변에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나 나머지 성읍들에 거주하나
모두 하나님 주변에 거주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것이 중요하다.
내가, 혹은 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중심이요 모두가 그 주변에 있어야 한다.
누구도 하나님의 주변이 있지 않다면,
그는 스스로 중심노릇을 하거나
하나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자라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 주변에 머물 것이다.
나의 거주지는 하나님의 주변이다.
나는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다.
각자에게 주어진 각각의 “자기 성읍 자기 기업”이 있다.
거기가 하나님 중심의 주변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