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0:1-39,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도)

하나님이 죄로 심판을 받는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은 이루어졌다.
그것은 단지 포로 귀한으로 성취될 것만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남의 나라 종으로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해방과 독립을
이 약속의 목표로 삼으신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혔다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때에
그가 단지 몸을 감옥에서 집으로 옮기는 것만을 그 사면의 내용으로 삼는다면
그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풍성한 선물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그는 이제 가족과 사회 속에서 복권된 자로
일도 하고 같이 어울리며, 무엇보다도 전과 달리 새 사람으로 살 것이다.
유다도 단지 몸만 바벨론(페르시아)에서 유다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아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새로운 언약의 백성으로 거듭 날 것이다.
그래야 한다.

느헤미야에는 성경에서 아주 아름다운 장면들이 비교적 많이 나온다.
7월 1일부터 시작된 말씀 공동체의 역사가 그것이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초막절(7.15~21)을 지키고
바로 며칠 후 7월 24일에 다시 모여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회개하고 기도하였다.
말씀으로 시작하여 그에 따른 순종의 결과가 하나씩 이어진 것이다.
찬양과 회개와 기도!
특히 기도는 지난 역사를 상세하게 되뇌며 구체적인 적용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다시금 “견고한 언약”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도의 합당한 열매였다.
이제 진정한 회복이 시작된다.
그것을 하나님과 견고하게 언약한다.
지금까지 참으로 늘 요동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견고한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유다 백성은 그것을 기록하고 인봉(서명)했다.
그냥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고 더구나 서명까지 했다.
그 서명자의 이름이 자세히 언급된다.
그 이름들이 각자에 의해 서명된 것이다.
본문에 나온 이름들은 아마도 한 가족의 대표들, 즉 가장들의 이름일 것이다.
한 집에 대표 한 사람, 아마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머지 가족들은 가장에 속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는 그 집의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맹세한 것이다.
이것을 굳이 안 써도 그러려니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을 쓴 이유는 이들 가족 모두의 자발성과 동행과 동역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가정이 해야 할 아름다운 모범이다.

모든 식구들이 다 각각 하나님의 귀한 가족 일원이다.
그것은 언제나 의식되고 나눠지고 확인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실이다.
가장 한 사람이 알아서 하나님 일을 혼자 다 하는 것은
성도의 가정의 의미를 많이 잃는 일이다.
다 각자가 자발적으로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또한 공적으로 다짐하며 순종으로 실행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 일은 대리될 수 없고,
분업화되는 일이 아니며,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
남편들과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이
모두 각각 자발적인 협력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공동체가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