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23-38,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느헤미야 9:5~38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긴 기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가히 ‘기도의 책’임에 틀림없다.
이 기도는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회고하며
하나님을 송축하고 오늘의 문제를 파헤치고 구체적인 간구로 귀결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백성들의 거역과 하나님의 긍휼의 반복이다.
참으로 끊임없는 반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은 하나님을 “심히 모독”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며,
하나님의 엄위하신 진노 앞에 다시금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크신 긍휼”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이 백성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셨다.

사람들은 “여러 해”, “여러 번”이라고 할 때
2~3, 혹은 4~5, 6~7이라는 숫자를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그 이상의 수일 것이다.
아,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그 “여러 해”와 “여러 번”의 반복이었다.
내 모습이 이와 똑같다!
이 반복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이 긴 기도의 마지막 결론은 곧 이 간구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다시금 “견고한 언약”을 세우겠습니다,
이것이 기도자의 다짐이요 간구다.
그렇다.
왜 그렇게 숱하게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었는가?
그것은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요동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견고”하게 공의와 긍휼로 일관하셨다.
이 기도를 드린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동과
하나님의 견고하심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그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것은 또한 참으로 황송하게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견고”함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요동하지 말아야 한다.
“견고한 언약”을 다시 맺어야 한다.

아, 어쩌면 이것도 이미 “여러 번” 했던 것이고
그 “견고한 언약”이 다시 요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시금 “견고한 언약을 세워”야 한다.
늘 그래왔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할 것인가?
그렇게 하여 언제나 짓는 죄를 운명처럼 당연시 할 것인가?
아니다.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고,
그것은 “견고한 언약”의 다짐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여러 번”, 즉 수천, 수만 번을 참고 기다리시고 건져내셨는가?
다시금 일어서서 제대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 아닌가?
다시금 “견고한 언약”을 맺으시기 위함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도 오늘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운다.
하나님께 다시금 견고하게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