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9-22,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던 역사를 기억함)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이어
7월 1일부터 시작된 유다 백성들의 영적 회복,
즉 말씀 앞에 온 공동체가 하나님과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 초막절(7.15~21)로 이어지고,
그 다음에 7월 24일에 다시 모여
말씀을 듣고 죄를 자복하는 일에 다시금 집중하고 있다.
이때 레위 사람 몇이 일어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뇌며
회개가 얼마나 말씀에 기초(해야)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자신의 역사를 보면 무엇을, 왜 회개할지 분명해진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의 역사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바로를 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셨다.
그 과정에서 홍해가 갈려졌고 애굽을 완전히 떠나 광야에 이르러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는다.
광야인데도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하게 40년 동안이나 식량을 공급해주셨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고 살 법을 주신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주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국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패역한 길로 갔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것,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요 본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체하고
“크게 모독”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아, 이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었다.
하나님의 구원 → 이스라엘의 망각 → 범죄 →
하나님의 긍휼 → 그럼에도 하나님을 모독 →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는 긍휼.
이것은 출애굽 당시만의 역사가 아니다.
구약의 역사가 늘 그러했고
심지어는 예수께서 오신 뒤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 믿는 이들에게서도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람의 패역함이다.

그 연결고리의 핵심은 곧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것,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죄악을 낳았다.
이것이 성도의 삶을 겸손에서 이탈하여 교만으로 빠지게 하고
성도가 맺어야 할 아름다운 열매를 부끄러운 현실로 바꿔놓는다.
기독교의 역사가 대부분 그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망각이 기억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해결책이다.
제2의 출애굽인 바벨론(페르시아)으로부터 포로의 귀환과 언약의 회복도
사실 다시금 이 악순환에 빠지는 것으로 귀결된 이 마당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기사를, 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바로 이것을 위해 여덟 명의 레위인 지도자들이 이 말씀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뇌고 있다.

인간의 죄 된 습성상 이것은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신 일을 기억하며,
내가 행한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으면 결국 나를 잊는다.
내가 지은 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 내가 이것을 기억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하여 나는 얼마나 정직하고 근면하게 하나님 말씀에 대면해야 하는가!
나의 기억력을 주관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