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1-10, 듣고 보는 것을 알리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히므로
그 자신이 바라고 사람들을 준비시켰던
메시아의 사역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는 감옥에서 그의 제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으므로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고,
어쩌면 감옥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가 바라고 있는 구세주의 모습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이 그의 질문을 예수께 전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심지어는 이보다 더 회의적인 질문까지 제기되었다.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많은 가짜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적그리스도들이―
두 번째 질문에 노골적으로 불쾌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나 말고 누가 또 있겠느냐!’
진짜에게서든 가짜에게서든 뻔한 답이 나올 질문을 세례 요한은 왜 했을까?
그것은 요한 자신이 진실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오실 그이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나 말고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한다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질문을 진실하게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오실 그이”요, “다른 이를 기다”리지 말아야 할 100가지 이유를 제시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신 것은
곧, 이미 약속되었던 선지자의 예언과 예수 자신이 행한 일의 증거뿐이다.
이거면 되었고 이것이 정답이었다.
다른 것, 다른 증거, 다른 장황한 설명은 모두 오답일 뿐이다.

예수님은 특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이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예수의 희한한 기적 목록이 아니었다.
만일 예수께서
‘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배부르며
최고의 주거환경에서 살게 해준다’라고 대답했다면
그것은 기적의 목록에는 들어가겠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의 증거 목록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오실 그이”인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가의 대답은
그의 기적의 강도가 아니라
성경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것과의 대조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다.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가?
나도 “듣고 보는 것”을 통해서 믿는다.
이것은 어떤 시대의 성도에게도 동일한 대답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이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든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는 것은 어떠한가?
나는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물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많이 보았다.
그러면 내가 보지 못한 많은 사실 때문에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의 감각에서 듣는 것과 보는 것이
그 대상과 감관과 효과가 차이가 있겠지만
이 모든 감각의 목적이요 결과인 인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동일하다.
소리와 청각을 통해, 형상과 시각을 통해 무엇을 알았는가―인지했는가―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소리와 현상으로 듣고 보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듣고 보는 것을 종합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권능을 행하신다.
바로 성경말씀이다.
성경은 역사적인 현장의 증언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문자의 기록이어서
그것을 입으로 소리 내어 읽을 때 사람은 그것을 듣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그때 그 장면을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경을 신문의 기록으로서만 아니라
텔레비전의 영상매체로도 전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 그때의 그 장면을 본다.
나는 예수께서 무슨 색의 옷을 입으셨는지는 보지 못하지만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고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해주고
귀신 들린 자를 성케 하신 것을 본다.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은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는 것과 동일하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 모든 장면을 보는 것이다.
나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보고 믿는 것이다.

혹시 많은 기적을 체험한 자는 전도하기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
특별한 경험 없이 그냥 믿게 된 것이 못내 아쉽고
내세울 것이 없어 전도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아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말씀을 들은 자요,
성경을 읽은 자는 모두 그 장면을 본 자이며
―그 장면의 중계를 본 자이며―
그는 그 현장에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나도 “듣고 보는 것을” 내 이웃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하다!
전도는 내가 듣고 보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내가 머뭇머뭇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