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4-42, 선생이 한 대로 제자도)

어제 말씀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따로 부르시고 그들에게,
‘너희가 나의 제자이니 스승인 나와 같이 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제자가 선생을 따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런데 얼마큼, 어디까지, 무엇을 따를 것인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예수님의 답은 ‘선생과 같이’라는 것이다.
선생이 한 만큼, 선생이 간 데까지, 선생이 한 일을 따라해야 한다.
제자는 선생과 같아져야 한다.
그래야 제자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요구나 명령이기에 앞서 사실은 예수께서 먼저 하신 일이다.
제자가 선생과 같이 하라고 하신 주님은
그 일을 이미 먼저 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러 오셨다.
그것은 세상이 헛되게 바라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받아주고 용서해주는 통 큰 하나님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인,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곳간과 불로 구분하여 처리하실 것이다.
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 진실이 처음부터 선포되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용서를 선포하시고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것은 화평이 아니라 사실은 검의 선포였다.
예수님은 한 집안 식구라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구분되고
서로 원수로 될 것을 가감 없이 진실하게 선포하셨다.
혈통이 같기 때문에 한 가족이 안전하게 구원이 보장되는 일은 없다.
예수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와
그것을 거부하는 이가
가족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나뉠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더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여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는 불효도 ―인간의 차원에서 볼 때― 감당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자기 목숨을 하나님을 위하여 잃으셨기 때문에
선생이 한 이 일을 제자들도 같이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께 나아오는,
아! 사실은 아직 나아올 생각도 못한 자들을 맞아주셨다.
사람을 영접하심에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만큼 “작은 자”를 영접한 분이 없다.
그리하여 제자는 이 “작은 자”를 예수로 영접해야 한다.

제자의 원리는 본질은 훈련은 이것이다.
선생과 같이 하는 것!
화평과 검에 대한 예수님의 진실을 지혜롭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데서,
모든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이 절대 중심이며 이를 위해 희생하는 데서,
하나님을 영접하며 또한 작은 자를 예수로 영접하는 데서
내가 예수께서 하신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오, 하나님, 저를 보오니 참으로 기가 막히나,
제가 제대로 순종하는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