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13, 자비의 율법)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안식일에 벌어진 일이다.
안식일은 율법 이전에, 아니 창조 당시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시간의 질서다.
이 중요한 규정은 두 십계명에서
모두 쉼으로서 안식일을 설명한다.
창조도 출애굽도 쉼으로서 안식일의 기원이 된다.

그러나 이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은 안식일의 의미는
쉼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을 지켜야 하는 계명 준수의 의미로 변질되었다.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무거운 “짐”이 되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 짐과 멍에가 무거운 것에서 어떻게 가벼운 것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주신다.
어제 말씀에서 묵상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짐과 멍에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짐과 멍에를 지고 메도록 오신 것이다.
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짐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싫어할 “멍에”라는 단어로써
의도적으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규정하고자 하신다.
주인과 종, 왕과 백성,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질서, 종속, 지배가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의 죄와 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이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의 단어다.

그럼 예수께서 내 등에 부과하시는 짐,
내 어깨에 메우시는 멍에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비”다.
안식일에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규정을 지키려는 것은
곧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자비를 베풀어서 누군가 안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예수의 쉬운 멍에를 메고, 가벼운 짐을 진 것이다.
그 일이 쉽고 경박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내가 메기에 쉽고, 지기에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멍에가 쉽고 예수의 짐이 가벼운 것은
그것을 메고 지는 사람에게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안식일 규정을 금기 사항의 준수로 지킨다면
나의 종교적 의를 이루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무거운 부담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므로 내게도 안식을 준다.
율법주의의 안식일은 무거운 짐이지만,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 안식일은 가벼운 짐이며 쉬운 멍에다.

사실 모든 율법의 계명들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데 초점이 있다.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자비다.
도둑질도 간음도 마찬가지다.
그 계명을 지킴으로 다른 사람이 안식을 얻는다.
그것이 곧 자비요 긍휼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그때 그 선행의 대상이 자비를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안식일 규정에만 해당되겠는가?
모든 율법이 자비와 긍휼을 위한 것이다.
내 마음이 누구와 싸우고 무엇과 다투고 있는가?
싸워 이기려는 것, 그것은 자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