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0:1-11, 기록하지 말라, 두루마리를 먹어 버리라)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오늘 본문은 앞에서 나팔을 불 때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점점 더 커지는지
그 심각했던 장면과는 다르다.
마지막 뭔가 놀라운 일이 나타나기 전에
이른바 ‘막간’의 장면인가?

실제로 천사의 위엄 외에는
“장차 될 일”은 특별히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중요한 사실이 눈에 띈다.
그 천사가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고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요한은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는 처음에 들었던 말씀,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명령대로
지금까지 계속 기록해오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아주 큰 소리로 천사와 일곱 우레가 말을 하므로
요한은 더욱 귀담아 듣고 그것을 기록할 생각이다.
그런데 예상외의 말이 들렸다.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놀라운 것은 요한이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그대로 행한 순종이다.
요한은 그 소리들을 분명히 들었고,
사실 너무 큰 소리라면 오히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는 그것을 정확히 알아들었기 때문에 바로 기록하려고 했다.
‘뭐라구요?
무슨 말씀 하신 거지요?
소리가 너무 커서 잘 못 듣겠어요.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이렇게 반문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명령에 따라
그는 기록을 시도하지 않고
우리에게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단서도 어떤 실마리도 운을 떼지 않았다.
그는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았다.
기록하라면 하고, 기록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다.
‘이걸 왜 기록하나요?
전에는 기록하라시더니 이제는 기록하지 말라구요?’라고
반문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이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계획이 있고
반드시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그 내용은 그것이 이루어질 때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계획일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신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없다.
이러한 믿음이 요한에게 있었기에
그는 반문 없이 순종했다.
진실로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적으로 믿었고 의지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참으로 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순종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믿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천사가 자기 손의 두루마리를 요한에게 주더니
그것을 “갖다 먹어 버리라”고 명령한다.
‘두루마리를 먹으라니, 이건 또 뭐지?’
이런 반문이 요한에게는 없다.
그것은 “작은 두루마리”라고 했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경계의 눈치가 역력하게,
조금씩 떼어서, 마지못해 입에 넣지 않았다.
그는 “먹어 버리라”는 말씀대로 ‘먹어 버렸다’.
아마도 한 입에, 즉각적으로 입에 넣고,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미각세포들이 그 맛을 느낄 수 있게 제대로 씹지 않았겠는가.
요한은 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기록하라면 하고, 기록하지 말라면 하지 않고,
먹어 버리라면 먹어 버렸다.

이 막간의 장면은 일곱 인이든 일곱 나팔이든
매번 중요한 것들의 보고가
얼마나 신실한 증언인지를 확증해준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장차 될 일”의 진상을
확실한 증거로 보여줄 뿐 아니라
성도가 따를 순종과 믿음의 진상을
또한 확실하게 가르친다.
내가 이것을 배우지 않으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