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9:1-12, 황충의 해)

다섯째 천사의 나팔로 인한 심판은
앞의 네 가지 경우에 비하면 아주 구체적이다.
땅과 바다와 강과 해·달·별의 1/3이
타버리고 피가 되고 쓴 물이 되고 빛을 잃는 정도와 다르다.
이번의 화는 직접 사람들에 대한 재앙이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황충이 전갈이 쏘듯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 황충의 모양까지 세세히 언급되는데,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사자 같은 이빨, 전갈 같은 꼬리, 그리고 쏘는 살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무기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화를 당하는가보다 누가 그 대상인가에 있다.
바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지시가
이들에게 내려졌다.
아, 이것은 성도들이 당할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께 원수로 살아온 자들을 향한 심판인 것이다.

그렇다.
일곱 나팔의 심판은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과정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성도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
하나님께 공의로운 심판을 호소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다스리시기를 성도들이 간구했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이 나팔의 심판 내용이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안심과 감사와 위로가 되는가.
아, 거의 모든 시대에 고난을 당하는 자는 성도들이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참으로 진실하게 순종하여 살려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환대받지 못했고 많은 고통을 당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고
이제는 그들의 환난이 끝나고
그들을 괴롭힌 자들이 고통을 당할 차례다.
어쩌면 환난하면 그 괴로움에 과민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제 성도들의 환난은 끝난 것 같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환난의 시대가 이르렀다.
그것은 참으로 안심이요 감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세세히 아셔서
그에 마땅하게 대응하신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성도들의 믿음은 착각이나 잘못된 미신이 아니었다.
진실로 그 능력이 입증된 것은 세상의 권세가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이었다.
성도들을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었다.
능력은 오로지 “구원”에 있고,
그 “구원하심”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 계시는 마지막 때의 성도들에게만 감사와 위로가 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아직 마지막이 되기 전인 지금,
이 현재의 시간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즉 요한계시록이 쓰인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현재의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다가오는 심판의 두려움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이 책은 마지막의 성도뿐 아니라
어느 시대든, 그 현재의 시간에 살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의 인침을 받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도 이 책이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심판의 내용을 보면 참으로 무시무시하다.
황충의 공격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다고 했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심하면 그들은 차라리 죽기를 원했을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죽음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허용된 것은 오로지 괴로움이다.
아, 이들이 왜 이러한 정도의 고통을 당하는가?
이것은 큰 환난에서 나온 성도들이 당했던 그대로 아닌가.
이것은 성도들이 원을 풀어달라고(伸寃) 간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었던가.
이들의 괴로움은 이미 성도의 고통이었다.
이들을 괴롭히는 황충은 바로 성도들을 괴롭혔던 그들 자신이었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지만,
마지막 때에 세상이 당할 심판을 보면서
성도들이 어떤 박해를 받았었는지 나는 알게 된다.
아, 그때 성도들이 이 일을 당했기에
오늘날 나는 편안한 시대에 박해 없이 살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서 나는 감사하고 안심하고
두려움 없이 끝까지 견딜 소망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