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8:1-13,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기도)

드디어 일곱째 인이 개봉되었다.
주께서 봉인하신 두루마리를 남김없이 열어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은 거의 모두 재앙에 관한 것이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모두 세상에 대한 심판이요,
다섯째만 예외적으로 순교자들에 대한 위로,
여섯째도 하나님의 “진노”였다.
역시 예외적으로 여섯째와 일곱째 사이에
예수의 피로 깨끗해진 구원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영광스런 미래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일곱째 인을 떼니
일곱 천사가 부는 일곱 나팔 소리가 난다.
역시 재앙과 심판의 선언이다.
첫째 나팔은 땅의 1/3이,
둘째는 바다의 1/3,
셋째는 강들의 1/3,
넷째는 해·달·별의 1/3이 심판을 받는다.
아, 참으로 무섭고 처참한 광경이다.
“피 섞인 우박과 불”, “불붙는 큰 산”,
“횃불같이 타는 큰 별”, 빛이 사라진 어두움.

그러나 이 무서운 심판은 누구에게 향한 것인가?
심판이라는 현상 자체는 참으로 두렵고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 대상에게만 그러하다.
이 심판은 어느 눈먼 고약한 신이 무작위로 휘두르는 칼이 아니다.
또는 지금의 자연에서 나타나는 천재지변과 같이
예측할 수 없이 누군가는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불의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재판이다.
그러므로 이 심판을 당하는 자에게는 완전한 절망이지만
반면에 하나님의 공의 아래 특별하게 보호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므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들에게 이 심판은 감사요, 기도 응답이다!

이 심판은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임한 일이다.
그 향로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모든 성도의 기도”가 담겨 있다.
그 기도가 천사들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즉 하나님의 일곱 나팔 심판은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그들이 어떤 기도를 드렸겠는가.
고통을 면할 수 있도록, 고통을 참고 이기도록,
그리고 그 고통을 가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공의로 다스리시도록, 아니겠는가.

시편 137편이 바로 떠오른다.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의 여러 강가에서 지배자들에게 놀림감이 된다.
그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한 곡을 뽑으라고 장난한다.
그때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가?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아마도 세상은 이 마지막 구절에 깜짝 놀랄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신 여호와의 미개하고 야만적인 잔인성을 비방할 것이다.
현대 과학세계의 세련된 계몽과 인도주의와 관용이
신화시대의 신들의 오만을 정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속 좁은 변덕 끓는 신이 인간에게 퍼붓는 화풀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의를 불의와 악으로 짓누른 행위를
하나님이 반드시 정의로운 처벌로 갚으신다.
그러므로 이 심판에서 성도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기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준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그 신실한 약속이다.
그러나 여기서 응답되는 성도의 기도는 무엇인가?
무엇이 응답된 것인지를 통해 역으로 무엇을 기도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응답된 것은 악인들의 공의로운 심판이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것을 성도들이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기도제목이어야 한다.
그저 나의 순간적인 문제들의 해결과 위기모면과
나 하나 잘 되기를 바라는 형통, 성공, 번영주의가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불의한 모든 현실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공의롭게 다스리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아, 내가 이 문제에 참으로 눈물도 없고 기도도 못했구나.
내가 다시금 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