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8:1-8,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이 시는 “감사”로 시작한다.
“감사”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지만
같은 의미로 “찬송”, “예배”, “노래”가 있고
“간구”도 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시인―다윗―이 하나님께 하는 자세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고 노래하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것은 모든 성도가 언제나 하나님께 드릴 자세요 행위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감사하며 찬송하고 노래하는가, 간구하는가,
또한 무엇으로 인하여 예배하는가이다.
시의 나머지 내용이 모두 이에 관한 것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나를 굽어살피”신다,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높이 계시다.
그러므로 찬양을 받으시고 예배되실 분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 같은 분, 나 같이 미천한 자라면
굳이 그를 찬양하고 예배할 것은 없다.
내가 나를 찬양하고 예배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요 주관자시며,
사람들이 상상해낸 그 어떤 “신들”보다 위에 계신 지존자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라고 고백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의 상상과 고안의 산물이다.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아닌 것을,
즉 우상을 신으로 섬긴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이외에 무엇인가를 섬기고 예배한다.
종교들만이 아니라 현대의 첨단 과학시대에도
대형 판매시장(쇼핑몰)과 각종 체육대회(스포츠)와
“군사-연예 복합체”가 ‘예전적’ 성격을 노골화하며
그 ‘신도’들의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종교적 상상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높이” 계시는 분이시다.
나는 “낮은” 데 있으며 “낮은 자”다.
나의 낮음은 피조물로서의 위치뿐 아니라 죄인으로서의 본성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상당히 높게 위치시켜주신 창조의 위치보다 한참 아래로 낮아 있다.
내가 지은 죄가 나를 더럽게 하고 낮게 한다.
그것은 겸손 때문이 아니라 더러움이며 죄 때문이다.

그런데 “높이” 계시는 하나님이
“낮은 자”, “낮은” 나를 “굽어 살피”신다.
하나님은 얼마나 높이 계시고 나는 얼마나 낮게 있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려면 “굽어 살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몸을 낮추셔서 나를 찾으시고
내가 더러움 속에 숨을 것을 발견해내신다.
아! 나는 주께서 발견하신 자다!

나를 찾기 위해 하나님이 첨단 탐지기를 마련해야 하고
나를 보기 위해 고도의 시력이 필요시겠는가.
하늘에서도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가 무엇을 감추는지 다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높이 계셔도” 나를 대면하시기 위해
“낮은 자를 굽어살피”신다.
하나님은 그냥 하늘에서 사랑을 선포하고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다.
나를, 낮은 자를 일일이 만나셔서
그들과 대화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그들의 한숨과 고통과 신음에 함께 하시며 대면하시고 동행하신다.
바로 예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그렇게 하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립보서 2:6-7)
그리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2:8)

다윗은 그의 감사와 찬송과 예배의 내용―그리고 이유―으로
높이 계신 하나님께서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는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그 내용―그리고 이유―을 시제로 보면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음이며(과거),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며(현재),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라는 확신이다.(미래)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하나님은 높이 계시면서도 낮은 나를 굽어 살피셨으며,
지금도 굽어 살피시고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굽어 살피실 것이다.
내가 완전한 구원의 날에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 중에 살아도
내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날에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낮은 데 있다.
그리고 그때도 하나님께서 높은 데서 낮은 나를 굽어 살피신다.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참으로 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