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1-17, 인을 떼어 미리 보여주심)

드디어 어린 양이 일곱 인을 하나씩 떼어내신다.
이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죽임 당하셨다가 살아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만
이 일을 하시기에 합당하다.
예수님은 그 존귀하신 능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비싸게 굴지 않으시고
요한이 보는 가운데 봉해진 인을 떼어
그 속을 하나씩 보여주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이미 말씀하셨던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요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다.
이미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악에 받쳐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환난과 핍박으로 괴롭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일곱 인의 내용들은 미래뿐 아니라
현재의 일에 대한 설명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주께서 보여주시고 요한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세세한 내용을 다 살펴보기는 어렵고 정리에 치중하면,
처음 네 개의 인을 떼며 등장하는
네 마리의 말들―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은
이기고, 즉 누군가는 패하며,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기근을 야기하며, 땅 1/4을 죽인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판의 사자들인지,
마귀의 세력들에 의해 일어나는 환난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 내용이 모두 재앙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내용은 순교자들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이다.
목숨이 끊어지고 이미 몸의 고통도 끝났지만
이 순교자들은 여전히 땅에서의 악한 상황으로 괴로워한다.
몸의 고통이 사라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다.
이것을 간구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공의로운 처리를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여섯째 인을 떼어 나타나는 상황은
다섯째와는 정반대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진노(심판)를 크게 두려워하며 숨을 곳을 찾는 자들이다.

정리하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앙과 고통에는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에 가하시는 심판도 있고
성도들이 당하는 박해도 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돌이킬 수가 없고,
성도들의 의로운 고통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차이다.
불의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살아온 자들의 ―회개할 기회를 그렇게 주셨는데도 거부한 방자함의―
마땅한 결국이다.
그러나 성도가 땅에서 겪는 재난과 고통은
―그것을 가하는 자들은 그것으로 성도들을 끝냈다고 여기겠지만―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회복을 누린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들을 부르셔서 요한을 하늘의 열린 문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개의 인을 떼어
그 내용을 다 보여주신다.
이것이 “지금 있는 일”이라면
환난과 혼란과 불확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흔들릴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살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라 할 것이다.
또한 “장차 될 일”이라면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만나도 역시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주관을 믿고 미래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불의한 자는 심판을 만나고
성도는 박해를 만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벗어나지 못할 최종의 사건이라면
성도가 겪는 의로 인한 고통들은 일시적이다.

이것은 이미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에서도
분명하게 강조되었던 것과 상통한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요
주님을 의지하여 끝까지 잘 견디라는 것이다.

아, 우주와 세계의 역사 내막에는
분명 마귀가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에 마지막 대적을 하고
훼방하는 일이 자행되어
선과 악이, 의와 불의가, 싸우고 있을 것이지만,
과연 어떤 사건이 어떤 나라가 어떤 정파가 그 누가 악의 세력인지
선에 속한 자인지 올바르게 구분하기란 참으로 혼미하다.
그 모든 것을 세세히 구분할 능력이 아직 모자라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며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지금 마땅히 할 일이다.
그리고 하루의 일상에서 사소한 일들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우주사적, 세계사적 선과 악, 의와 불의와 싸움의 진상이요 전초전인 것을 알고,
내가 여기서 올바르지 않으면
더 크고 중요한 것에서 과연 성도다울 수 있을지
심각한 자각으로 하루를 살아야 할 것이다.